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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Dec 02. 2023

병원 가는 날

쫄지마

6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간다.

물론 그 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들르는 곳이지만 6개월 텀의 이 방문은 엄청난 무게감을 가진 중요한 행사다. 주어진 시간동안 숙제를 열심히 하고 검사 받으러 가는 기분이다.  문제는 숙제가 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숙제를 완벽하게 하면 두려울 것이 없었는데 이건 뭐 숙제가 뭔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열심히 하는거라 잘 한건지 확신이 없다. 그래서 공부 덜하고 시험 치러 가는 사람마냥 불안하고 몸이 서늘해진다.


전날 밤새 뒤척거리다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다. 아직 밖은 어둡고 혹시 마음도 어두워질까봐 유투브 채널을 뒤적이며 심신 안정에 좋다는 강의를 찾아서 틀어놓고 다시 눈을 감는다.

'누구나 어려움이 닥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힘이 되는 고전이야기'

소위 말해 검진 주간이 되면 내 알고리즘은 대충 이런 것들로 채워진다.

그닥 귀에 들어오지 않는 강의가 끝나갈 즈음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한다. 금식이니 밥을 먹을 필요도 없고 마스크를 쓰니 화장도 패스다. 큰 행사치고는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다. 그저 쫄지 않는 단단한 마음만 준비하면 된다.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겨 바지는 금속 없는 트레이닝복으로,  신발 벗을 일이 많으니 신고 벗기 편한 슬리퍼를 신고 약간은 예의 없어 보이는 복장으로   집을 나선다. 

병원가는 날 아침은 매번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아무튼 뭐라도 하나는 걸리적 거린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건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긴밀하게 붙어서 돌아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도착.

마스크를 썼는데도 병원 입구부터 장소가 주는  특유의 공기 냄새가 있다. 별로지만 익숙해지고 친해져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적응만이 살길이니까.

일단 수납부터 하고 체혈실로 간다.

피를 그렇게 자주 뽑았는데 아직도 주사바늘은 무섭고, '따끔합니다' 하는 말에 고개를 돌린다.

오늘 체혈실 선생님은 친절하고 목소리도 밝다. 그럴 땐 괜히 안도가 되고 평소보다 백배는 더 고맙다.

-힘드시겠지만 제발 의료진분들 상냥해주시라!!!

의료진의 숨소리ㆍ눈썹 움직임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서 있는 환자들이니 부디 어여삐 여겨주시길-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직장에서 자기 일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감사인사를 하게 된다.

내가 좀 더 착해지면 내 몸 나쁜 것들도 착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미신 비슷한 것이 생겼다.

실제로 착해져서 나쁠 것도 없으니 잘된 일이다.

다음은 ct촬영이다. 나의 동지들이 예쁘고 섹시하게 찍고 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는데 그게 과연 오늘은 될까. 택도 없는 소리지만 그래도 힘나는 응원이다.

종이컵으로 물 두잔 마시고 조영제 넣을 특이하게 생긴 바늘을 손등에 꽂으려는데 혈관이 숨는다. 간호사샘은 날이 추워서 그럴 수 있다며 작은 히터를 가져와 손의 온도를 높여주고 나오라는 듯 혈관에 톡톡 노크를 한다.

노크에 응답하듯 바늘을 꽂을 수 있게 혈관이 살짝 올라온다. 놓칠세라 바늘을 찌른다.

씨티실의 하얀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분명 편한 자세로 누워 있는데 이렇게 안편할 수가 있나 싶게 불편하다. 조영제가 온 몸에 퍼질 때  몸이 따뜻해지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도 같이 퍼져나간다.

이 시간에 기도를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천주교 냉담자인 내가 이럴 때는 염치 불구하고 클린&클리어 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초음파,뼈스캔까지 마치고 나온 병원은 또 아픈 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로 빼곡하다.

술집에 가면 온 세상 사람들이 술만 마시는 것 같고, 여행을 가면 모두 여행만 다니나 싶은데 병원에 오면 모두 아프기만 한 것 같아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 생각도 잠시, 금식 해서인지 검사가 끝나서 긴장이 풀어진 것인지 배가 고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의 색깔과 상관없이 주책없게 배는 고프다. 감정에 따라 메뉴만 달라질 뿐.

오늘 시험은 잘 치뤘으니 다음주 우등생으로 칭찬받는 성적표 받을 즐거운 상상을 하며 밥먹으러 가야겠다.

`비싸고 맛있는거 먹어야지!!'

아참!!오늘 저녁에는 다이어트 댄스 첫 수업이 있는 이다.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흔들어보자.

나와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 모두 힘내시라.



'쫄지마! 씨발!'

김어준이 팟캐스트 진행하던 시절에 마지막 멘트로 늘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 쫄지마!!!

뭐 어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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