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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Dec 01. 2023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흔들릴지라도

사랑하고 감사하면서 오늘도 빛나는 하루!!!


내가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카톡 마지막 인사의 고정 값처럼 쓰 는 말이다. 저 말대로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이상적인 삶이 될 것  같아 매일 외쳐보지만 쉬운 슬로건은 아니다.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 하니 매일 말하다 보면 한번쯤은 되는 날도  있고 그게 모여 여러 날이 되고 내 일상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은근 기대도 해본다. 한때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 드라마속의 대사처럼 심장이 딱딱해져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 진다는 건 그만큼 책임질 일과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엄마의 눈물 섞인 하소연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  않았을 테고 신랑의 실수에 그러거나 말거나 초연할 수 있고 아들진 어깨에 잠 못 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친구 의 아픈 소식에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나만 신경 쓰면서 살았더라면 훨씬 편하고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 했다. 감사하기보다는 늘 더 가지고 싶어 했고 비교하며 투정부리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나에게 찾아왔다. 찾아왔다는 점잖은 표현으로는 부족하니 쳐들어왔다 정도가 적절 할 것 같다. 난 많이 아팠고 매일 울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둘  다 뒤틀리거나. 최악의 시간들이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슬로우가 걸린 영화처럼 끝은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에 밤새 잠을 설치다 겨우 눈감기를 반복했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며 내 걱정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이들에게 뻔뻔스럽게 의지하며 짐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하소연이 듣기 싫어 전화를 피한 적도 있었는데, 엄마가 보내온 꽃바구니에는 ‘사랑하는 딸!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라고 쓰여진 커다란 리본이 달려 있었고  출퇴근 하듯 우리집에 와서 살림을 도맡아 주었다. 신랑은 외모도 엉망이 된, 하나 이쁠 것 없는 나를 이쁜이라고 불렀고 아이들은 늘 나를 응원했다.

난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은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하니 괜찮다고 했다. 난 사랑해서 힘들다고 차라리 사랑 따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들은 나와 달랐다. 부끄러웠다.

사랑이 뭐길래 보이지도 않는 저 감정의 단어가 주는 힘이 이리도 큰 것일까.

사랑으로만 버틴 거라면 거짓말일 수 있겠지만 가족의 사랑이 없 었으면 난 지금 어찌되었을까를 상상해보면 그건 사실에 가깝다. 그렇게 제 아무리 힘든 일에도 끝이 있다는 노래 가사처럼 오늘이  왔다. 너무 클리셰같지만 다시 주어진 내 시간에 감사와 사랑으로 채우리라 수없이 다짐했다. 글 쓰는 사람은 곡절이 있어야 한다며 사연 있는 사람이 울림 있 는 글도 잘 쓸 수 있는 거라고 감사하기도 한다. 물론 잠시지만.


내 인생 후반부 슬로건은 정했는데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 다. 등교 전 게으름 피는 아들에게 마뜩찮은 표정으로 모진 말을 퍼붓 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외쳤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성적표를 보고 버럭 화를 낸다. 감정 조절에 실패한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아들에게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엄마의 넋두리는 여전히 듣기 싫고 신랑의 일거수일투족에 전혀  의연하지 못하고 친구들의 아픈 이야기에 빙의되어 가슴이 저리다. 그 날 이전과 이후 내 생활이 달라진 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이제 는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고 감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으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나쁜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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