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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Nov 30. 2023

내일 갈게!

없을 수도 있어.내일

"내일 갈게”

“혁이 저녁 주고 학원 데려다줘야 해. 퇴근시간 차도 막히고”


엄마의 전화에 내 입장만으로 가득한 핑계를 대고 있었다.

목소리는 떨리고 불안했다.


 “아빠가 안 좋아 보여”


내가 대학생이었던 때부터 좋아 보이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던 아빠이기에 그 말이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날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환자실에서 나온 날도 늘 굽힘 없이 당당했으며 유머 감각까지 발휘해 간호사들을 웃기는 여유마저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휘어지지 않는 지나친 고집이라 생각했고 남들에게만 친절한 사람이라며 투덜댔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면 이상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픈 아빠에게 단련이 될 법도 하지만 걱정과불안은 늘 리셋이 되어 새롭게 다가온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소위 말해 워킹맘이었던 나는 늘 허둥댔다. 몸과 맘이 번갈아 가며 바빴고 두 개가 동시에 바쁜 날은 정말 최악이었다.

욕심은 능력보다 앞서 있었고 어설픈 완벽주의까지 추구하느라 시간은 항상 부족했으며 시간을 대출해 주는 은행이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도 자주 했다.

아들을 학원에 내려주고 늦은 저녁 시간이 되자 엄마의 왔다 가라는 불안스럽게 떨리는 목소리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내 자식 다 챙기고 나니 부모 생각이 나는 나쁜 딸이었다.

아직 퇴근 전이었던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다.

“어디야? 퇴근 중?

 엄마가 아빠 안 좋다고 왔으면 하셨는데 혁이 챙기느라 못 갔는데

 마음이 불편하네"

 “내가 가는 길에 들렀다 갈게”

 “고마워”


 ‘띠띠띠띠띠 띠리링~’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달려 나가 아빠의 소식을 물었다.

뒤돌아 누워계셔서 뒷모습만 보고 왔다고 답하는 신랑 말에 불안했지만 내일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누웠다.

언제 잠들었는지 몇 시인지 모르는 시간에 전화가 울린다. 받기도 전에 이미 건너편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무섭게 진동이 느껴진다.

예측하지 않은 시간의 전화는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다.


 “여보세요?”

 “아빠가... ...”


 ‘오늘 갈 걸’

 ‘오늘 갔어야 했어.’


달리는 차 안에서 더 빨리 달리는 내 마음을 부여잡고 한없이 울면서오늘 갔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내일이 없는 줄 알았더라면 분명히 오늘 갔을 텐데 내일은 오늘 뒤에 당연히 있는 날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아빠는 내일 없이 그길로 연꽃 같은 옷을 입고 풍등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한동안 죄책감 비슷한 우울감에 힘들어하면서 살아갔다. 수년이 흐르고 그렇게 살다 보니 살아지고 사라졌다. 난 여전히 빛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산다


 “텃밭에서 키운 상추가 엄청 맛있어. 와서 가져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은 목소리가 밝다.

  “내일 갈게”


깨달은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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