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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Jan 04. 2024

아들 생일! 윈터스쿨 입소!

언제나 응원해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부모입니다!.


윈터스쿨 출입문 앞에 커다랗게 붙어 있었던 문구다. '잘 가르쳐보겠습니다. 걱정은 넣어두세요'라는 안도를 위한 말이었겠지만 그 현수막을 본 순간부터 괜히 마음이 울렁거리며 너울을 탄다.

"뭐래? 여기서도 저기서도 어디서도 내가 엄마야!" 긴장된 분위기를 녹여보려고 되지도 않는 농담을 해본다. 12월 30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하필 윈터스쿨 입소날이 이날일 게 뭐람. 이럴 때마다 '괜찮아, 365일 중 하루일 뿐이야'라고 되뇌며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억지로 박아 넣는다. 다르게 해석하면 대수로운 날임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생일 오전에 여행 가는 사람처럼 수건, 속옷, 입을 옷가지들, 세면도구등 필요한 물품을 챙기느라 집 전체가 어수선하다. 캐리어에 짐을 넣어본 기억 중 가장 재미없는 분주함이었다. 그래도 꼭 생일파티는 하고 들여보내고 싶어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최고급 한우를 넣은 미역국도 끓여줬다. 내 마음 편하려고  생일파티를 하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진심을 담아 생일축하 노래를 지금까지 해본 중에 가장 큰소리로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생일 축하합니다."


파티는 빠르게 끝났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는 아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차량에 연결해서 들으며 기숙학원으로 향했다.

남들이 보면 고작 5주 동안 떨어져 있는 건데 마치 군대 훈련소에 데려다주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남이하면 유난이고 내가 하면 지극히 정상인 경우가 많다.

윈터스쿨, 말 그대로 겨울방학 동안 가는 학교다. 군대처럼 강제성을 띄고 누가 오라 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그것도 오픈런하듯이 모집 시작 하자마자 마감된다는 말에 조바심 내며 서둘러 내가 예약한 곳이다.


"윈터스쿨 가볼래?"

"고1겨울방학이 엄청 중요한 거 알지?"

"중3 겨울방학 때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맨날 중요하대"

"그래, 그렇긴 한데 이번엔 진짜 중요해"

"한번 해볼까? 힘들 것 같은데."

"힘이야 들지. 그래도 거기 아무나 못 들어가. 성적표 내고 합격해야 갈 수 있어. 일단 내볼게"

"아~~ 알겠어요"


어차피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목표인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아들도 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 둘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부도 가장 그러한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난 시키는 입장에서 정보를 찾고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상황이니 판단과 실행에 있어 적극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잘 실천해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아들은 망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그것들을 포기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부터 2년이 너의 남은 인생을 만들어.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지 않을까?"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면 나중에 훨씬 많은 걸 쉽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결정은 했지만 걱정을 할 아들에게 토닥임이랍시고 하는 말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다. 참 많이 들었던 이상적인 말을 나도 내 아들에게 복사해서 전달하고 있다. 뾰족한 묘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도 한번 해보겠다고 말해주는 아들이 고맙기도 했다. 아마 수없이 갈등했으리라.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표차는 49대 51 정도로 간신히 승리했을 것이다. 어쩌면 소수점 차이의 박빙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이 이긴 것에 대견하다고 안아주고 싶다.


윈터 스쿨에 대한 고민은 '이번 겨울 방학 2달을 어떻게 보내지?'에서 출발했다. 마법사가 수정구슬을 문지르면 미래를 예견해서 무언가 보이는 것처럼 아침마다 치러질 전쟁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안 일어나니? 대체 몇 시까지 자는 거야? 학원숙제는 다했어?"

"일어난다고요. 알았다고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고요체'. 분명 존댓말인데 들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은, 사춘기에 많이 쓰는 말투를 이렇게 명명했다. 아무튼 방학 내내 고요체와 싸우기 싫었다.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고(사실 어른이 되어도 쉽지 않다. 어른이라는 무게 때문에 조금 더 참을 뿐 별반 다르지 않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고 아침 해가 올라오듯 밝은 얼굴로 일어나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아침마다  내 욕심과 걱정이 합쳐져 강력한 불을 뿜을 것이고 그 불에 아들과 내가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잠시 거리 두기를 하자.' '아들에게도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주자.' '강제성의 도움을 받아 2학년에는 성적을 올려보자.' '방학 동안 규칙적인 생활만 해도 기숙학원 비용이 아깝지 않다' 기숙학원을 보내는 타당한 이유들을 생각했고 아들에게 기숙학원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제안을 통보로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들이 싫다고 했으면 안 보낼 생각이었으니 제안 쪽에 가깝다.


그렇게 가을부터 준비한 기숙학원에 12월 30일 생일에 입소했다.

가는 길에 또 눈이 온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 주차를 하고 배정받은 방에 짐을, 독서실에는 교재들을 옮겨놓고 설명회 장소 의자에 앉았다. 마이크를 잡은 담당선생님의 설명만 들으면 모든 아이들이 서연고에 진학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 모든 시설과 시스템은 완벽해 보인다. 완벽함 속에 안쓰러움이 찾아와서 아들 옆모습을 자꾸 바라보게 된다. 설명회가 끝나고 이제 우리는 집으로, 아들은 기숙사로 들어가야 한다.

남매니까 그저 둘째 아들인데 한 여섯 명쯤 있는 자식 중에 막내아들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덤덤하게 인사하고 돌아서야 한다고 내내 생각했는데 실패했다. 사춘기가 찾아와 지겹게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갑자기 너무나 애틋해져서 안아주며 눈물이 나버렸다. '아놔~ 이런 그림 아닌데~'

신랑과 딸, 그리고 나는 연신 '파이팅!'을 외쳐주고 아들을 기숙사로 올려 보냈다. 가다가 뒤돌아볼게 분명하기에 우리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뒤돌아 보자마자 또 손을 힘차게 흔들어줬다.

우리는 세명이고 아들은 혼자 같아서 마음이 또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넷이다!!!

이제 5주 동안 볼 수 없고 2주에 한번 전화가 올 거라 했다. 생활하는 모습은 일주일에 한 번씩  사진이 업로드될 것이고 온라인 편지를 쓸 수 있다 했다. 우리 셋은 입소 첫날 사랑하는 마음이 아들에게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애절한 사랑편지를 썼다.

이제 6일 차인데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밥은 잘 먹는지 궁금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으면서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고놈 힘 좀 들어봐야 정신 차려!' 입소 전까지 한 생각이다.

'너무 힘들면 어쩌지' 지금 생각이다. 아무튼 같은 방향 다른 형태로 늘 아들 생각을 하고 있다.


5주라는 시간이 긴 인생에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겠지만 아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기를 기도한다. 대학이 뭐길래!. 사교육에 미쳐 돌아간다고 외치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고 선봉에 서있는 느낌이지만 자책하거나 누구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의도는 분명 선이라 믿으니까.

퇴소하고 드라마틱하게 변화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분명 제자리로 돌아와 또 지지고 볶으면서 정을 쌓아가게 될 것이다. 어느 날은 브런치에 아들 욕을 한바탕 쓰는 글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래도 저래도 언제나 응원하고 사랑한다. 안 쓰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나저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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