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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l 24. 2023

#13. 아들의 마음이 '쿵' 한 날

싱가포르 한 달 살기

2023년 1월 17일 화요일 
싱가포르 한 달 살기 11일차



아이의 체력 회복력은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어제 레고랜드를 다녀온 후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는데

아들은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서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매우 의아한 건

왜 학교에 가야 하는 보통의 날에는 일찍 일어나주지 않는 걸까..

아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회복 속도는 빠른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다. 


간단히 아들 아침을 챙겨 먹이고

미리 봐둔 숙소 근처의 브런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겉에서 봤을 때는 오래된 건물에 좁은 입구였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감성적인 인테리어에 좋은 향과 밝은 조명으로 꾸며져 있었다. 





자리를 잡고 싱가포르의 유명한 카야 토스트와 커피를 시키고

Best라고 추천되어 있는 코코넛 과일 푸딩도 시켰다. 


그리고 조용히 흘러나오는 카페 음악에 기대어

아들과 함께 유유자적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만들고

바둑판을 그려서 바둑도 한 판 뒀다. 




시원한 카페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금세 두 시간이나 흘렀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거리를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해서 조금 더 걸어서 래플스 시티 쇼핑몰에 가보기로 했다. 

아들은 여러 쇼핑몰 중에서 래플스 시티가 가장 좋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그냥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싱거운 녀석♡







CS fresh 마켓에 가서 김치랑 두부를 사고

아들이 계속 노래 부르던 물총 장난감을 샀다. 

손바닥만 한 작은 물총인데도 오후에 수영장에서 물놀이할 때 재밌게 잘 가지고 놀았다. 

물총이 작아서 물을 쏘고 나면 금세 비어버리는 게 아쉬웠지만..



늦은 오후에는 아들이 타고 싶어 하는 싱가포르 플라이어에 가기로 했다. 

싱가포르 전경을 볼 수 있는 대관람차인데 어제 레고랜드 갈 때 버스 주차장에서 가까이 보고서는

오늘 타러 가고 싶다고 한다.

완전히 어두워진 다음 야경을 볼지 아니면 어두워지기 직전에 맞춰 노을을 볼지 둘이서 얘기하다가 

오늘은 야경 말고 노을을 보기로 했다. 



8명이 탈 수 있는 캡슐에 같이 온 사람들끼리만 태워주고 있어서

아들과 둘이서만 캡슐에 탈 수 있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캡슐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근사한 풍경에 압도 당하기 시작했다. 

뭉게뭉게 복슬복슬한 구름들이

고층 빌딩 뒤로 병풍처럼 자리 잡고 있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노랗고 주황빛이 나는 노을이 함께 비추고 있어서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리나베이 샌드도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했을 때보다 더 웅장해 보였다. 

얼마 전 보고 온 가든스 바이 더 베이도 손바닥보다 더 작아지면서 발밑으로 보이는 게 앙증맞아 보였다. 

플라이어가 꼭대기로 오를수록 나는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는데

아들은 전혀 안 무서운지 겁도 없이 캡슐 안을 누비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그러다 아빠에게 보내겠다며 영상 메시지를 찍는데..


녀석...


아빠한테 전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다 담긴 게 느껴져서 보고 있는 내가 다 기특했다. 

영상 메시지를 받은 남편은 감동받은 목소리로 아들에게 고맙다고 너무 고맙다고,

다음에는 꼭 셋이 같이 싱가포르에 여행 가자고 약속을 했다. 







지상 166m 꼭대기에 다다른 후 플라이어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아들에게 오늘 아들 덕분에 정말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다고 꼬옥 안아주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플라이어에서 내려 Esplande로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아들이 문득 눈물을 글썽거리며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혹여 어디가 아픈가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어서

하나씩 구체적으로 물어봤는데

그냥 계속 마음이 이상하게 아픈 것 같다고만 했다. 

그래서 슬퍼서 아픈 건지, 무서워서 아픈 건지, 걱정이 되어 아픈 건지 묻다가

아들이 아픈 게 아니라  울컥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본인의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른처럼 표현력이 풍부하지 않다 보니

처음에 아프다고 표현한 것 같았다. 

그래서 왜 울컥하는지 다시 물으니

아빠도 엄마도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을 해서,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고 한다. 

음.. 평소에도 고맙다고 자주 말하는데 오늘은 뭔가가 달랐을까?

아빠와 함께 하지 못한 여행이지만

가장 멋진 풍경을 보면서 그 배경으로 다음에는 아빠와 꼭 같이 오고 싶다고 

진심을 다해 말하는 아들의 영상 메시지에서 

아빠를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의 찡한 마음이 느껴지긴 했다. 



플라이어에서 아들을 꼬옥 안으며 

진심으로 아들에게 고맙다고 한 나의 말과 마음이

아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느꼈다. 

그래서 아들도 평소와 다르게 나와 남편의 고맙다는 말이

더 감성적으로 깊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저녁 먹으면서서 아들에게 얘기해 주었다. 


"여행하면서 매 순간, 어느 멋진 순간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행을 즐겨보자. 그게 여행이 주는 매력이기도 해. 지금 아들 마음에 떠오르는 그 생각과 지금의 이 시간이 만나서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겨질 거야. 그리고 우리의 여행은 끝이 있고 그 끝엔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할 거야. 그러니 지금은 즐거운 생각만 하고 엄마랑 이 순간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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