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파랗고, 연둣빛 초록이 심심하지 않게 펼쳐져 있고, 빨간 장미가 선명한 색을 발하는 창문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 직후였다.
'오늘은 기어이 제시간에 퇴근해서 금요일 저녁을 즐기리라.
그리고 딸과 자전거를 함께 타리라.'
작년, 딸에게 두 발 자전거를 가르치기도 전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가족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가득 차 있었다. 딸은 그 해에는 자전거 타기를 실패하였고(괜히 시무룩 (brunch.co.kr)) 올해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기우뚱하며 페달 구르기도 힘겨워하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평지에서 커브를 돌며 왔다 갔다도 할 수 있으며, 내리막길도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오게 되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아파트 내에서 나름의 훈련을 했다. 자전거를 탄게 아니라 훈련이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탔겠지만 엄마 혼자만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이 훈련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근처 하천을 따라 곧게 뻗은 자전거 도로를 함께 타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 이 훈련의 성과를 볼 차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빨리 저녁을 먹고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엄마랑 자전거를 탈 것이라고 말하니 요즘 자전거 타기에 푹 빠진 딸이 좋다고 응답했다. 집에 자전거가 2대(아이용 1, 어른용 1)인지라 마침 수영을 다니는 아빠는 다음에 함께 타기로 했다. 저녁을 얼른 먹고 치우고선 작은 가방에 물, 바람막이 점퍼, 이어폰, 물티슈, 밴드를 넣어 집을 나섰다.
거창한 자전거 라이딩을 떠나는 사람처럼 비장하기도 하였다. 아이가 중간에 넘어져서 다치거나 하면 큰일이고 데리러 올 사람도 몇 시간 동안은 없었다. 이렇게 까지 할 일일까 싶겠지만 딸에게 오늘의 목표는 안전한 자전거 타기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조심히 페달을 굴렀다.
평소에는 자주 이용하지 않는 아파트 후문을 지나니 바로 횡단보도가 보였다. 안전교육을 잘 받은 아이답게 모든 횡단보도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걸어서 건너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생각해 보니 오늘 내렸다 탄 횡단보도만 수십 개는 된 것 같다. 이것이 정석이지만 다소 귀찮은 나와는 달리 아이는 이것도 귀찮지 않은지 싱글벙글이었다. 평소 자동차로 지날 때는 내리막길임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자전거를 타니 내리막 경사가 꽤 되어 보였다.
"엄마, 여기 내리막이다. 페달을 안 굴렀는데 그냥 내려가네."
"브레이크 잡으면서 조심히 타야 해. 속도 빠르다. 넘어질 수 있으니까 조심히"
"응, 안전제일!"
아이는 속도가 꽤 붙었는데도 안정적이게 내 뒤를 따라오기도 앞서기도 했다. 계획한 대로 하천에 접어들자 나도 한시름 놓았다. 이제부터는 자전거 전용도로에 평지니 말이다. 때마침 살짝 노을이 지고 노란 조명이 켜지자 공원은 아름다웠다. 게다가 바람도 살랑인다. 그제서 물도 한잔 마시고, 첫 라이딩을 기념하며 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내가 꿈꿔온 그림에는 하나가 더 있어야 했다. 바로 음악.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어 딸의 귀에 한 짝, 내 귀에 한 짝 사이좋게 나누어 끼었다. 그다음 핸드폰에서 '여름밤에 듣기 좋은 노래'를 검색하여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비로소 내가 꿈꿔온 모습이 완성되었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기분 좋은 음악을 듣는다. 그 옆으로 개울물 소리가 졸졸졸 들리고, 노을이 지며 노란 불빛이 길가에 번진다.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