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이라면 입학일 테고 다른 학교에 다녔더라면 전학을 왔을 테지만 그동안 국내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2학년으로 취학을 하고 우리 반 학생이 되었다. 부모 모두 한국인이지만 아이는 필리핀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한국어는 어느 정도 구사하나 영어가 더 편한 아이였다. 그렇다고 영어 또한 완벽하지는 않았다.
일단 의사소통이 제일 급선무였다.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몸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학교 생활을 했다. 아이도 쉽지 않은 타국 생활에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았고, 다가왔던 친구들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곧 떠나기 일쑤였다. 수업 중에도 멍하게 있는 경우도 많았다. 다가가서 알려주면,
"나 이거 못해."
"못해도 괜찮아. 선생님이 도와줄게.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른한테는 존댓말을 써야 해."
"나 몰라."
아이들도 자신과 달리 담임 선생님께 반말로 이야기하는 하늘이를 보며
"왜 하늘이는 선생님한테 반말해요?"
라고 묻기 일쑤였다.
저학년은 이렇게 외국에서 살다오지 않아도 한글을 익히지 못한 경우가 꽤 있다. 이럴 때는 방과 후에 남아서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남아서 공부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아서 학부모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어머님. 잠시 통화 가능하세요? 제가 하늘이 방과 후에 한글 좀 가르쳐도 될까요?"
"정말요? 선생님. 저야 정말 감사하죠."
학습지를 시키려고 알아보고 있었다며 밝은 목소리로 감사함을 표했다.
아이는 한글 공부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며 꾸준히 남았다. '한글이 야호'와 학습지, 교구를 활용하며 잘 배우다가도 어느 날에는 다 까먹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는 조금씩 늘어나는 한글 실력처럼 점차 학급에 적응을 했다.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제법 어울리기도 하고
"학교 재밌어."
"선생님 좋아."
라고 표현할 줄도 알았다.
한글이나 학교 적응 문제로 하늘이 엄마와는 자주 통화하는 편이었다. 오랜만의 한국 생활에, 자녀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입장이니 알림장이나 가정통신문 챙기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래서였을까 교사의 전화에 '항상 잘 도와주는 선생님 최고'라 하니 가끔은 학부모가 아니라 아이와 통화하는 느낌도 들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앞에는 필요한 이야기로 채워졌을 통화였다. 통화가 끝날 때쯤
"선생님, 요즘 물회가 제철인데 괜찮으시면 소주 한 잔 해요. 제가 기막힌 곳 알아요."
"네?"
"물회 싫어하세요? 제가 어제도 갔다 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감사해서 선생님과 꼭 먹고 싶어요."
"아, 네. 그런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마음만 받을게요."
"진짜 맛있는 곳... 인..... 데.....
왜요? 선생님은 안 돼요? 한국은 안 돼요?"
"네. 한국은 안 돼요."
"아... 정말 아쉬워요."
교사 재직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신박한 제안이었다. 필리핀은 교사와 학부모가 그럴 수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즈음 속초 물회를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노래를 불렀던 내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아마 한국을 떠났다 고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랬으리라.
"네, 어머님 그럼 들어가세요."
"선생님, 생각 바뀌시면 꼭 연락 주세요. 진짜 맛있어요."
생각은 안 바뀌었지만 몇 해가 지나도 오늘처럼 더운 날이면 자연스레 물회와 하늘이 엄마가 생각나며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