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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넌 꽃이 틀림없구나.

by try everything

"으아, 벌, 벌이야. 무서워."

"그냥 벌레야, 무슨 맨날 벌이야. 맨날 그렇게 하면 어떻게 야외활동을 해."

"아니야, 으아앙."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하다가 아이가 울어버리자 그제야 자전거를 멈추고 다가갔다. 아이가 옷을 한껏 당겨 공간을 벌린 틈새를 살펴보니 진짜 벌이 있다.

"어, 뭐야."

하며 손으로 황급히 툭 치니 벌이 아래로 떨어진다. 아이는 이미 놀라 울고 있고, 우리 부부도 황당해하며 아이의 몸을 살폈다. 빨간 점을 콕 찍어둔 것 같은 상처가 보인다. 핸드폰 케이스에 꽂힌 신용카드를 얼른 꺼내어 벌침을 제거해 보는데 이미 떨어진 건지 따로 보이는 것은 없다. 빨간 점 주변으로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모기 물린 듯이 부풀어 오르고 또 그 바깥으로 피부가 울긋불긋해졌다. 아직 집에 가려면 자전거로 15분은 더 가야 하는데 지금은 자전거가 애물단지다. 자전거만 없었음 택시를 탔을 것이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택시 잡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는 최근의 더위에도 얇은 바람막이를 꼭 입으려고 했다. 덥다고 외투를 벗고 반팔만 입으라고 하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벌에 물릴까 봐 걱정이란다. 이런 딸이 답답해서 그때도 오늘처럼 '무슨 맨날 벌이냐, 그렇게 벌을 무서워하면 바깥에 돌아다닐 수 있겠냐, 벌은 가만히 있으면 안 문다'며 혼내기 일쑤였다.


아이도 유난스럽긴 했다. 벚꽃이 한창인 올봄에도 벌이 무섭다며 벚꽃 구경은 절대 사양했고,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수시로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벌레에도 꺄악 소리를 지르곤 했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즐겨하던 텃밭 가꾸기나 꽃 심기는 2년째 손을 놓았다.



아이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재작년 여름 물놀이를 첫 개시하는 날, 땅에서 날아온 벌에 쏘인 것이다. 물놀이를 하고 10분쯤 지났을 때 물총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물 밖으로 나가 걷던 순간 긴팔 래시가드를 뚫고 벌이 문 것이다. 벌에 쏘여본 적 없는 나로서는 '위기탈출 넘버원' 속에만 보던 일이니 더 당황스러웠다.


입장권까지 사서 들어온 곳에서 20분 만에 철수를 했고 응급실을 가야 하는 건가 고민했다. 아이는 모기 알레르기가 심한 편이어서 말벌은 아니더라도 쇼크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팔이 땅땅하게 붓고 열감이 느껴지니 걱정이 됐으나 아이도 놀란 마당에 나마저 호들갑을 떨 수 없어 대범한 척 아이를 진정시켰다. 한 손으로는 얼음찜질을 해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 검색을 했다. '벌에 쏘였을 때'라고 검색하니 개인차가 있으나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안심이 되면서도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어른인 부모도 그러했으니 그 일을 직접 겪은 아이는 통증은 물론 무서움까지 느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아이 아빠까지 벌에 쏘이는 것을 목격했으니 벌에 대한 아이의 두려움은 날로 커져갔다. 그렇게 2년을 보낸 오늘, 아이는 또 벌에 쏘인 것이다.




"어떻게 2번이나 벌에 쏘이지?"

"자전거를 같이 탔는데 우리 딸만 딱 골라서 무냐."

황당한 일에 우리 부부는 말문이 막혔다.


"이제 딸의 트라우마는 인정해 줘야겠다."

아이를 강하게 키운답시고 벌에 대한 아이의 마음을 호들갑이고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집에 와서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얼음찜질을 해주니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상처도 가라앉았다. 잠에서 깬 아이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많이 아팠냐고 하니 이젠 괜찮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잘 모르고 혼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해주니 마음이 풀리는지 가슴에 꼭 안겼다. 딸을 꼭 안아주며 농담도 건넨다.


"너는 진짜 틀림없는 꽃인가 봐. 그러니까 맨날 벌이 우리 딸한테만 오지. 왜 이렇게 예쁘게 태어난거야."

아이도 기분 좋은지 살포시 웃는다. 마음도, 상처도 나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벌아, 진짜 우리 딸 물지 마라.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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