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May 29. 2023

내 남친의 전 여친이 궁금하다.

13살입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J?"

"응, 작년에 사귀다 헤어졌잖아."

"그냥 나보고 사귀자고 해서 사귄 거야."

"그렇다고 그냥 사귀냐."


눈과 손은 바느질에 집중하며 다른 사람들이 들을 새라 몸을 틀어 속삭이며 대화한다. 목욕탕에서 그들끼리만 들리게끔 하는 이야기처럼. 하지만 오히려 속삭이는 대화가 더 흡입력이 있고,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티는 내지 않지만 귀는 그곳으로 향해있다. 게다가 내 바로 앞자리에서 일어나는 대화니 더 빠져든다. 아마 나 말고 이 자리 주변의 사람들 중 몇몇은 나처럼 이러고 있을 것이다. 



남자의 연애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다. 싱겁기도 했다. 사귀자고 해서 사귀었다가 헤어지자 해서 헤어졌다는 줏대 없는 남자라니. '그럴 거면 왜 사귀냐'라고 참견하고 싶었지만 듣고 있던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신 대꾸해 준다. 



그러던 중 옆 자리의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그래서 걔 만날 때는 행복했어?"
"어?"
"만. 날. 때. 행. 복. 했. 냐. 고."
"......"


이보다 더 또박또박 말할 수 없다. 갑자기 나타나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물어보는 여자는 옆 자리에서 바느질 하던 사람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남자에게 그냥 아니라고 해,라고 코치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그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대화에 참견하는 주변인이 많아지자 다른 이들의 바느질에 방해되지 않도록 나도 침묵을 깨고 말했다.



"얘들아, 지금 수업 시간이에요. 조용히 바느질합시다. 지금 너무 떠드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불필요한 이야기는 교실에서 하지 않아요."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배경: 6학년 교실, 실과 수업 중 바느질 시간

2. 등장인물: 남학생 A, 여학생 A, 여학생 B, 담임교사, 주변 친구들

3. 인물 관계도: 남학생 A와 여학생 B는 남자 친구와 여친 사이, 여학생 A와 여학생 B는 친구

4. 학급 친구인 남, 여학생이 대화를 하고 그것을 듣던 남학생의 여친이 마지막에 묻는다. 담임교사는 바느질을 지도하며 바로 앞 줄에 쪼르륵 앉아있는 아이들의 대화를 안 듣는 척 다 듣고 있다. 






우리 반의 두 학생은 공식 커플이다. 단, 내 입으로 이들이 사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 적도 당사자들도 내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주변 아이들이 담임에게 말해주기 전에 교사의 촉으로 이들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들은 4월의 학부모 공개수업 끝나고 서로의 부모님께 정식으로 소개까지 한 사이지만 나는 굳이 공식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졸업 때까지 그 사이가 유지되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이번 달에 두 아이는 공교롭게도 나란히 앉게 되었다. 우리 반은 짝 없이 혼자 앉고 있는 형태이기에 짝은 아니지만 나란히 앉아있다. 멀리 떨어져 앉을 때는 수업 시간에 바디랭귀지로 몰래 대화를 해서 눈에 띄더니 옆에 앉으니 오히려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라 평소보다 조용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오히려 그들보다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용히 내 남친의 전여자 친구 이야기를 듣던 현 여친이 궁금함이었는지 질투심이었는지 모를 감정으로 묻는다.



13세의 대화에 섣불리 낄 수는 없다. 담임은 아이들의 이야기와 상황에 끼고 빠짐이 중요하다. 모든 것에 다 관여를 하면 교사의 눈과 귀를 피해 모든 일을 몰래할 것이고, 모든 것에 다 모르쇠를 하면 교실은 난장판이 된다. 적당한 치고 빠짐도 교사의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한 차례 진정시키고, 다시 바느질을 시작하며 조용히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K야,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어."

요즘 속담을 배우니 속담을 활용하여 주어도 없이 이야기했는데 아이는 그 뜻을 이해했는지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바로 옆 P와 B에게도 수업시간에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말라고 조용히 이야기해 주었다. 

훗, 괜찮은 치고 빠짐이다. 


 




오늘의 교실에는 내 남친의 전 여친이 궁금한 아이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답해야 했던 아이가 있었다. 

 

이전 13화 13세의 당당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