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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un 10. 2023

수학이 뭐라고(1)

학교


우리 반 K가 쉬는 시간 내 곁을 맴돈다.

눈이 마주치길래


"왜?"

하고 물으니

"아니에요."

하고 멀찌감치 도망간다.


이러길 두어 번 하길래

"왜 무슨 일이야. 말해 봐."

하니

"선생님, 너무 부끄러워서 종이에 썼어요. 읽어 보세요."

하고 교과서 속에 숨겨 둔 쪽지를 건넨다.




아이는 반 아이들 중 제일 먼저 등교하여 창문을 다 열고 교실을 환기시키거나 전날 교실 청소가 안 된 곳은 청소도 해놓는 아이였다. 급식 시간에 아이들이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갈 때까지 서있는 내게 항상 급식판을 들고 맛있게 드시라며 밝게 인사한다. 수업시간에는 딴짓을 하지 않고 맨 뒷자리에 앉으면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나와 눈 맞춤을 한다. 게다가 방송실 부원인 것은 진작에 알았는데 수업 후 도서관에 갔더니 도서 도우미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학생 부서 활동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아이들을 뽑기에 이것만 보더라도 아이의 학교생활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3월부터 바른 모습을 보여준 아이는 어머니께서 적어주신 학생기초 조사표에 수학을 어려워하는 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3월 진단평가에서도 수학 성적이 또래에 비해 낮았다. 이것을 바탕으로 4월 학부모 상담 때 학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 수학 학원을 다녔는데 학원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안 다니고 있어요. 다시 알아보고 있긴 해요."

"혹시 방과 후에 제가 수학을 가르치면 동의하실 의향이 있으실까요?"

"저야 좋죠. 그런데 5학년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아이가 친구들 시선 때문에 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려서 못했어요."

"그렇군요. K가 한다고 하면 괜찮으신 거죠?"

"네. 근데 안 하려고 할 거예요."



맞다. 아이들에게도 공부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아이와는 이야기해 본 적 없기에 기회가 되면 '꼬셔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수업시간에 간간히 내 학창 시절 이야기도 해주는데  야간자율학습이 있던 시절의 낭만과 추억을 말해주면서 반 아이들에게 장난스레 물었다.


"선생님이랑 수학 야자(실제로는 아니나 느낌을 살려 말한 단어이다) 해 볼 사람?"

"저요. 저요."


7-8명의 아이가 손을 든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이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도 여럿 포함이길래 한 아이에게 왜 공부하고 싶으냐 물으니 학원 숙제가 많아서 요즘 쉬고 있으니 선생님과 공부하고 싶다 했다.


"너무 멋지다. 너희들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려는 모습이 대단한 거야."


이 말이 K의 마음에 와닿던 걸까, 아니면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도 선생님과 공부하고 싶다고 손드는 모습에 용기가 나서였을까 그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서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아까 그거 지금 신청해도 돼요?"

"그렇지, 선생님은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는 언제나 환영이야. 나중에 가정통신문 나가면 꼭 신청해야 해. 알았지?"


속으로 '아싸, 꼬시기 1단계 성공'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 아이는 약속을 지키듯 그렇게 방과 후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열심히 손들었던 아이들은 기초 수준을 위한 대상자가 아니라 함께 하지는 못했다. 주 1회이긴 하지만 2시 30분에 수업이 끝나고 1시간 정도를 더 공부해야 하는 것이 힘들 법 한데 빠지지 않았다. 이런 수업의 경우 하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놓으면 혼란한 하교시간을 틈타 도망가거나 앉아있더라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K처럼 스스로 의지를 보인 친구들은 어렵고 힘들다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오늘 6교시는 4단원 비와 비율 수학 단원평가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아이는 내게 쪽지를 내밀었던 것이다. 아이의 그런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조용히 불러 점심시간에 짬을 내 공부하기로 하였다.


"백분율 계산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거지?"

"네."

"그런데 지금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은 계산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것이라서(수업은 완료한 상태지만) 실제 문제에서는 어려울 수는 있어. 그래도 이따가 문제 꼼꼼히 읽고 잘 풀어봐. "


우리는 그렇게 점심시간에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했다. 사실 다른 아이도 공부 모임에 초대했지만 결국 점심시간에 놀고 싶다며 함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K의 시험지를 채점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대며 미소가 지어진다. 앞장이 모두 동그라미다.


'우와, 이 녀석 열심히 풀었네.'


뒷장까지 채점하니 2개 틀려서 20문제 중 18개를 맞았다. 이 정도면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 잘 한 편이다. 아이는 점수가 궁금한지 집에도 가지 않고 또다시 내 주위를 빙빙 돈다.


"선생님, 저 시험 몇 점이에요?"

"몇 점 맞았을 것 같은데?"

"... 한 60점?"

"그래? 한 번 직접 봐봐."


문제지 중에서 아이의 것을 꺼내어 주었다.


"..."

"열심히 풀었던데? 정말 잘했어."

"와-"


90점이라는 점수에 놀랐는지 말도 없이 문제지를 손에 들고 만화처럼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뻐하였다. 다시 내게 시험지를 돌려주는 순간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아이의 모습에 내가 수학 1등급을 맞은 것처럼 덩달아 기뻤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도 때론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다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의 기억은 아이에게 큰 자극이 되어 줄거라 생각한다.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왔으니 수학에 대한,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행복한 마음으로 인사하며 하교하는 아이에게 소리친다.


"엄마한테도 꼭 자랑해."


'난 남편한테 자랑해야지.'(이유는 다음 화에...)





내 자식도 아니고, 100점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수학이 뭐라고 이깟일에 기분이 좋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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