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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Nov 01. 2023

미션1. 모둠을 구성하라.

체험학습이라는 험난한 세계(2)

"선생님, 에버랜드 모둠 짰는데 모둠 때문에 아이가 운다고 학부모한테 전화 왔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해요?"

"한 명이 아무 모둠에서도 안 껴줘요. 결국 제가 모둠 해주는 친구들 간식 사준다고 달래고 해결했어요."

"저희 반은 모둠을 일주일 전에 짰는데 여자애들끼리 싸워서 모둠 다시 짜야할 것 같아요."


요즘 동학년 선생님들의 대화 주제는 체험학습 모둠구성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떠오른다.


'체험학습....... 가기 싫다.'




남학생 15명, 여학생 15명으로 구성된 8반 학생들이 놀이동산으로 체험학습을 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모둠을 구성하면 좋을지 서술하시오.


체험학습 사전 단계인 '체험학습 모둠 짜기'는 얼핏 간단해 보일 수 있으나 고학년일수록, 여학생들일수록, 체험학습이 학생들의 자율 활동으로 구성될수록 꽤나 고난도의 작업이 된다.

 

왜냐하면 문제 속에 숨겨진 미션이 있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1. 소외되는 친구가 없어야 한다.

2. 놀이기구 탑승 수준이 같은 친구들끼리 조가 되어야 한다.

3. 이전에 다툼이 발생하여 현재 관계가 좋지 않은 친구들은 같은 모둠이 될 수 없다.

4. 되도록 짝수가 되어야 하며 많은 인원은 활동 시 나눠질 수 있으니 6명 이내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5. 활동 시 다툼이 없고 모둠이 되었을 때 즐겁게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6. 버스에서는 멀미하는 학생을 배려해야 한다.


이제는 시작해야 할 때이다. 아이들에게 모둠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원하는 사람들끼리 모둠을 하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곳은 학교다. 게다가 30명의 각기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섞여있는 곳. 평화로운 학교 생활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희망대로만 할 수 없다. 하지만 몇 시간을 마음에 안 맞는 친구들과 다니는 것도 고역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제안을 한다.


"이제부터 에버랜드 모둠을 짤 거야.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희망하는 친구들과 모둠을 정하긴 할 건데 일단 놀이기구 탑승 수준을 고려해야겠지? 모둠원은 홀수가 돼도 상관은 없지만 2명씩 타는 경우가 많으니 싸우지 않도록 가위바위보를 하든, 순서를 정하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해. 그리고 6명 이상이 되면 찢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모둠원은 6명까지만 가능해. 단! 모둠을 짜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소외되는 친구가 발생한다면 선생님이 모둠을 정해줄 거야.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주변도 잘 돌아보도록. 그럼 모둠 짜기 시작!"


아이들은 다행이라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친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인다. 그 무리 속에서 내 눈은 몇몇의 아이들을 찾는다. 역시나 모둠을 구성하는 일에 나서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아이가 보인다. 최근에 친하게 지내던 아이와 크게 싸워서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한 여학생과 결석과 조퇴가 잦아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는 학생운동선수 1명이 제자리에 앉아있다. 그곳으로 다가가 혹시 둘이 같은 모둠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 물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이던 다른 여학생을 찾으니 홀수이긴 하나 모여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걱정했던 또 다른 학생도 모둠원이 2명이긴 하나 짝이 되어 에버랜드 이야기에 빠져있다.


"혹시 에버랜드 모둠 못 짠 사람 있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모둠 짜기 전에 너무 걱정만 앞섰나 하는 자책과 동시에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00% 희망하는 친구들로 구성된 다른 모둠도 이대로 결정이라는 생각으로 안도한다.



이제 2단계 돌입이다. 모둠끼리 계획서를 작성한다. 모둠장을 정하고, 서로의 연락처, 어떤 놀이기구를 탈 것인지,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와 제일 중요한 서로의 약속을 적는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가 싶은데 한 모둠만 계획서 제출이 늦는다. 평소에 할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조용하고 모범적인 아이들로 구성된 모둠인데 계획서 작성은 한 명만 하고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말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다.


'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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