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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Nov 01. 2023

노란 버스, 너! 얼마면 가질 수 있니?

체험학습이라는 험난한 세계(1)


말 많고 탈 많았던 일명 '노란 버스'.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현장 체험학생을 위한 어린이 이동은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버스만 가능하다는 법제처의 해석에 따라 체험학습을 앞두고 2학기를 분주하게 시작했다.


10월에 에버랜드로 현장체험학습을 계획했던 우리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주변 많은 학교에서는 노란 버스를 구하지 못해 1년 전에 어렵게 예약까지 해놓았던 체험학습을 취소했고 이로 인해 학부모와 학생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도리가 없지 않은가. 많은 제약에  묶인 학교가 불법을 저지르면서 학생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활동 속에서도 불가피하게 안전사고가 나면 모든 것은 담임교사나 학교의 책임이 되는 판국에 무리해서 체험학습을 추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도 뉴스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보니 매번 쉬는 시간에 내 주위로 모여든다.

"선생님, 진짜 에버랜드 안 가요?"

"아직 몰라. 결정 안 됐어."

"그냥 저희가 알아서 에버랜드 가면 안 돼요? 걸어서 가요. 아니면 아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할게요."

"그럼 가족끼리 다녀오면 되겠네."

"가족이랑 가는 거랑 다르죠."

"저희가 관광버스에다가 노란색 색칠할게요."

"포스트잇 붙이는 건 어때요?"

"선생님, 저 체험학습 가려고 이사도 미뤘단 말이에요."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체험학습의 의지를 불태우는 아이들을 보니 짠하기도 하다. 새로운 소식이 들려올까 촉각을 곤두세우며 며칠이 지났다. 그러다 학교에서 가까스로 노란 버스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노란 버스가 아침, 저녁으로 본래의 운행을 하고 난 여분의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기에 체험학습 시간과 학생의 활동이 가능한지와 변동된 시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생각하며 오랜 시간 협의를 했다. 또한 노란 버스는 원래 계획한 전세버스보다 비싼 탓에 체험학습비도 덩달아 비싸졌다. 같은 학교라도 저학년은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체험학습을 취소하기로 하였으나 6학년은 어렵게 노란 버스도 구했으니 졸업 선물과 같은 마음으로 계획한 체험학습을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열광의 도가니다.

"선생님, 최고예요!"

"그렇지? 6학년 선생님들이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야. 그러니까 말 좀 잘 들어."


소식을 전하기만 한 나도 세상을 구한 구원자쯤으로 추켜 세워준다. 학원 친구들을 통해서나 주변에서 체험학습을 취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이번 체험학습에 대한 기쁨이 남다른 모양이다. 2달이나 남았는데도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체험학습 장소로 노란 버스를 타고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후 교사들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전해진다.

어린이 통학버스(노란 버스)는 학교장, 동승자(교원), 운전자가 필수교육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통안전 교육센터에서 온라인 교육을 수료하고 확인증을 버스내부에 비치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으아악! 이건 또 뭐야?'


각종 의무연수와 안전연수가 1년 단위로 꽉 차있는데 노란 버스로 체험학습을 간다는 이유로 또다시 동승자 이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비슷한 내용을 이미 15차시로 학습을 하였는데 연계가 되지 않는지 다른 연수처에서 교육을 받으라니 가뜩이나 바쁜 2학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힌 느낌이다. 아이들의 기쁨과는 대조적으로 교사는 일거리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다. 화가 잔뜩 난 채 사이트를 열어 수강신청을 한다. 빨리 이수해서 털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강의를 들을수록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렵게 노란 버스 구했더니, 이젠 노란 버스 탄다고 연수를 들으라고?'


체험학습을 가기 위한 여정은 생각보다 험난한 편인데 시작부터 꼬여버리니 결국 성질이 나서 빈 교실에서 외쳐버렸다.

"내년엔 체험학습 안 갈 거야. 절대 안 가!! 안 가!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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