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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Nov 02. 2023

모둠원 매칭에 성공하였습니다.

체험학습이라는 험난한 세계(3)

"보라네 모둠도 계획서 썼으면 얼른 가지고 오세요."

이상함을 감지하지만 모르는 척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계획서는 이상이 없다. 다만 계획서를 들고 온 보라와는 달리 4명의 아이들은 쭈뼛쭈뼛 눈치를 본다.


"왜? 무슨 일 있어?"

"..."

"이야기를 해야 선생님이 도와주지."

".... 선생님 저희 아직 모둠 정해진 거 아니에요."

"뭐라고? 너희 지금 5명이 모둠 아니야?

"그게 아니라..."

말을 함과 동시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우는 아이 대신 옆의 아이가 보라의 눈치를 보며 말을 잇는다.


"사실은 저희 4명이 모둠을 하기로 정했는데 보라가 왔어요. 그렇지만 모둠을 같이 하기로 한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보라한테 가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5명이 모둠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짝이 안맞아요."


사실 보라는 모둠을 구성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아이 중 하나였다. 여름방학에 SNS로 반 친구들을 비방하는 글을 올려 학급의 대다수 여학생들과 단절이 된 아이였다. 평소에도 말이 센 편이라 불편함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SNS에서 크게 터뜨려버리니 관계 회복이 쉽지 않았다. 이후로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보다는 덜 친했던 아이들과 어울리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갔는데 그 친구들도 에버랜드는 함께 하기 불편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도 당황했지만 제일 당황한 것은 보라였을 것이다. 보라도 함께하자고 다가가는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미지근한 반응에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그것을 느껴서 모둠을 같이 하기 싫다고도 못하고 끙끙대다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아까 말했으면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이야기해봤을 텐데, 아이들도 다 모둠을 짜버렸는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안 되겠니?"

또다시 침묵이다. 일단 보라는 자리로 들어가라고 하고 아이들을 설득해 본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보라가 친구들이랑 싸워서 다른 여학생들과는 모둠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야. 너희가 같이 해주면 안 될까?"

"저도 1학기에 보라 때문에 상처받은 적도 많고, 놀이기구 타려면 홀수는 애매해요."

"아... 일단 알겠어. 그래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알겠지?"

남은 아이들도 자리로 돌려보내니 더 고민이 된다.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들이라 부탁을 하면 들어줄 줄 알았는데 완강한 아이들을 보니 해결이 쉽지 않아 보였다. 속상한 보라의 마음도 살펴줘야 했다.


"보라야, 아까는 속상했지? 그런데 아이들이 이미 4명이 하기로 했었나 봐. 그러다 나중에 보라가 같이 하자고 하니 미안해서 말을 못 했대. 속상하겠지만 아이들도 이해해 줘."

혹시나 해서 2명이 모둠이었던 다른 여학생 2명과 같이 모둠을 하면 어떨까 물으니 이번엔 보라가 거절한다.

"소라랑 사이가 안 좋아요."

이제는 남은 여학생들이 없다. 명단을 보니 홀수의 남학생 모둠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모둠을 불러본다.


사연을 이야기하니 한 아이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한다. 다른 아이들은 승낙도 거절도 아닌 대답을 한다.

"상관없어요."

"상관없다는 게 뭐야? 괜찮다는 거야?"

"뭐 상관없어요."

도돌이표 같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니 확실하게 다시 묻는다.

"보라랑 같은 모둠이 돼도 불편한 것 없고 괜찮다는 거지? 너희가 너무 싫으면 말해도 돼.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한테 묻기 전에 너희 모둠이 홀수라서 보라가 오면 짝수도 되니까 먼저 물어본 거거든."


이렇게 말하니 용기를 얻은 것인지 한 아이가 대답한다.

"저는 5학년 때 모둠이 진짜 별로여서 체험학습이 최악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마음 맞는 남자들끼리 다니고 싶긴 했어요."

"아, 그래? 혹시 보라가 끼면 많이 불편할까?"

"많이 불편한 건 아니지만  저희가 짠 계획이 있는데 싫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아, 그건 선생님이 말을 할게. 너희가 먼저 짠 계획이 있어서 보라가 나중에 들어갔으니 따라 줘야 한다고. 그리고 보라한테도 물어보긴 해야 해. 그럼 보라도 괜찮다고 하면 너희 모둠이 되는 거다. 알겠지? 그리고 고마워. "

"네."


천사도 이런 천사가 없다. 내가 힘들 때,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해주면 그게 바로 천사다. 그리고 지금의 천사는 바로 이 아이들이다. 보라한테 묻지는 않았지만 천사 같은 이 아이들이라면 보라도 괜찮다고 할 것 같다.


"보라야, 혹시 이 친구들이랑 모둠 하는 거 어때? 보라만 괜찮다면 이 친구들도 좋대. 다만 이 친구들이 먼저 계획을 해 놓은 게 있어서 그건 따라줘야 할 것 같아. 괜찮겠어?"

"네!"


보라도 웃음이 번지며 금방 대답을 한다.


'아, 살았다.'


천사 모둠원에게 온 마음을 다해 하트가 뿅뿅 발사된다.

'정말 기특한 녀석들! 내가 언젠간 이 은혜를 갚으리!'

옆반 선생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간식으로라도 보은을 해주리라 다짐한다.

이렇게 별 것 같은 별 것 아닌 모둠구성이 끝난다.




이상형 매칭이 아닌 모둠원 매칭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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