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주말이란 어떤 의미일까?
간만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까치집을 지은 머리는 아랑곳없이 잠옷 차림으로 우아하게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날이랄까?
그런 내게 또 하나의 기쁨이 있다. 바로 딸아이가 차려주는 아침 밥상을 받는 것.
아이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직장맘인 덕분에 아이가 문화센터에서 하는 정규강좌는 못 들었지만 가끔씩 주말에 하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며 취미를 가진 덕인지 요리를 좋아한다. 아니면 손으로 사부작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에서 나 또한 기쁨을 얻는 편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요리에는 관심이 없다.
퇴근길에 남편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일 정도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낀다. 만들면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해주지만 매일 일상이 되니 어떤 음식을 차려내야 할지도 고민이고, 그걸 해내려니 나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한 그릇 음식이 주가 되곤 한다. 과거 엄마의 식탁에서 봐왔던 몇 개나 되는 밑반찬과 국, 메인요리가 차려진 식탁은 꿈도 못 꾼다. 한 끼를 무사히 해치웠다는 안도감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부담감에 한 때는 한 달 식단표를 보고 미리 주문하는 반찬배달도 시켜보고, 그것이 질릴 쯤이면 집 앞 반찬가게도 전전해보지만 매일 먹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 그마저도 시들할 때쯤 다시 나의 요리가 시작된다. 또다시 힘들면 배달음식도 시켜보지만 뭘 먹을지에 대한 고민도 반복되고 무엇보다 씀씀이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면 기승전-돈-으로 돈이 엄청 많으면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먹을 수 있다던가 더 나아가서는 반찬 만들어주는 도우미분을 쓸 수 있다는 생각까지 뻗치고서는 왜 나는 못 그러는가까지 넘어가서 우울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내게 딸은 한줄기 빛이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엄청난 한 상을 차려오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주먹밥과 전자렌지 요리 정도이다. 그래도 내 눈에는 콧노래를 부르며 한 끼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딸은 내게 우렁각시이자 하느님이다.
아이가 대여섯 살 때쯤에는 급할 때 주먹밥 만한 것이 없었다. 밥에 멸치, 치즈, 김가루, 깨,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앙증맞게 만들어내면 한 끼 뚝딱이다. 엄마가 주먹밥을 만드는 것을 본 딸은 자기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아이용 일회용 장갑까지 준비해서 만든 것이 요리의 시작인 듯싶다. 아이의 처음에 감동하는 부모들이 그러하듯 우리 부부는 감동과 칭찬을 퍼부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홈쿠킹클래스를 지나 엄마 도움 없이 요리를 하겠다고 선언한 순간부터 나는 보조인 듯 보조 아닌 보조요리사가 되었다.
어느 날은 유튜브에서 본 전자렌지로 만드는 계란빵을 만들어준다고 하고는,
"엄마, 계란 좀 준비해줘." (계란을 꺼내서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제거하여 그릇 1에 담고, 계란껍데기를 담을 그릇 2를 준비한다)
"엄마, 계란 껍데기가 들어갔어."(신속히 나타나서 계란 껍데기를 빼주며 주변에 흐른 계란물을 닦는다)
"엄마, 전자렌지용 접시 준비해 줘."(몇 개의 빵인지 신속하게 스캔하여 알맞은 접시를 대령한다)
"엄마, 이쑤시개는 어딨지?"(서랍에서 꺼내어 딱 필요한 곳에 둔다)
"엄마, 파슬리 가루가 손에 안 닿는 곳에 있어. 꺼내줘야 해."(냉동실에서 꺼내주고, 다음번을 위해 아래쪽에 두기로 마음먹는다.)
그 뒤로도 수많은 '엄마' 소리와 함께 예쁘고 앙증맞은 요리가 탄생한다. 그 주변으로는 슬라이스 치즈 봉지, 떨어진 빵가루, 파슬리 가루, 접시, 그릇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혼자 요리한다고 한 딸 어디 갔니?
요리 프로그램처럼 세팅된 재료와 도구로 딸이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요리의 전, 후를 담당하게 되는 구조 덕에 가끔씩 아이의 요리선언이 반갑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2년 정도 보조요리사를 자청하니 이젠 주방에 들어서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요즘은 전자렌지로 딸아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찾고 있다. 아직 새로운 메뉴 업데이트가 안되긴 했지만 올해는 전기밥솥으로 밥도 자주 해준 우리 집 1등 요리사다. 급할 때 전화해서 "딸, 밥 좀 해줘." 하면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해주는 귀한 딸. 엄마처럼 불을 사용하는 '진짜' 요리를 하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넘보고 있지만 아직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속으로는 얼른 더 커서 맛있고 다양한 요리를 해줄 날을 기다리는 나는 철없는 엄마일까?
딸아, 이 마음 변치 않고 꼭 맛있는 음식 많이 해주렴.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보조요리사 한 나,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