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실감

비즈니스석을 추앙하라.

여행 에세이 쓰는 작가도 꿈입니다.

by try everything

GATE 4, 새벽 2시 35분,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출국할 때는 여행의 설렘으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그런데 귀국길의 여행자들은 이제 더 즐길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은근히 피곤한 심신을 얼른 한국으로 데려가주길 바라며 멍하니 자리를 지킬 뿐이다.


우리 가족은 중간에 팔걸이가 없는 3인석 의자를 차지했다. 내 무릎을 아이에게 내어주어 되도록 편히 누울 있도록 하고, 나는 와이파이 도시락의 Wifi를 파도 삼아 인터넷 서핑 중이다. 비행기에서 즉시 잠들 수 있도록 몸을 더 피곤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저가항공의 의미가 그러하듯, 가성비는 넘치되 서비스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비행기에서 잠도 못 자면 너무 가혹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가항공을 탈 때만 아담한 키를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긴 하지만 거의 직각인 등받이와 무릎이 닿을 것 같은 앞 좌석과의 거리, 5시간의 비행시간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까 본 인스타 속 누구는 만 3돌이 채 안된 아들과 여행을 간다고 사진을 올리고서는 해외 여행 할 만하다고 한다.


그리고 난 보았다.

넓다. 세상 넓다. 자리가 넓다.

비즈니스구나.


나도 비즈니스석 타고 가면 맨날도 가겠다며 속마음이 툭 튀어나온다. 내가 타야 할 비행기와 비교가 되며 비행기보다 공항 리무진 버스가 차라리 낫다며 입이 삐죽 나온다. 잘 여행하고 와서 왜 마지막에 불만이냐 하겠지만, 사실 이 불만은 저가항공의 이코노미석에 앉을 나를 향한 것이다.




이 와중에 엣헴, 나도 비즈니스 경험자다.

꽤 많이 거슬러 가야 하는데, 바야흐로 10년 전에 남편과 스페인 여행을 떠날 때였다. 공항에 평소보다 늦게 도착해서 분주한 마음으로 발권을 하는데 조심스럽게 들려오는 직원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객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해드려도 될까요?"

"네?"

"두 분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해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추가금 없이요?"

"네, 고객님."


이런 좋은 제안을 그리 공손하게 하시다니. 화내고 윽박지르시더라도 두 번 세 번 yes입니다. 10시간을 넘게 비행기에서 갇혀 있어야 하는데 2명이나 공짜로 좋은 좌석을 배정해 준다는 것은 출발도 하지 않은 여행 통틀어서 가장 큰 횡재다. 비즈니스석은 넓고 좋은 좌석이라고만 알고 있던 여행 조무래기었던 우리는(사실 지금도)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쓴 요리사가 수제 웰컴 초콜릿을 들고 반겨주는 미지의 세계로 입장했다. 그 뒤로도 유리잔에 담겨 나오는 웰컴 드링크, 메뉴판이 제공되는 선택이 가능한 기내식, 일회용이 아닌 진짜 접시에 담겨오는 레스토랑급 요리, 개인 파우치, 어매니티, 침구에 넋이 나갔다. 다리를 힘껏 뻗어도 앞자리가 닿지 않던, 다리가 하나도 저리지 않던 즐거운 비즈니스석 체험기가 10시간 만에 막이 내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다시는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달콤하고 황홀했던 비즈니스석의 감동이 소환된다. 마흔이 돼서 그런가 체력이 달려서 이제 이렇게는 해외여행을 못하겠다. 비행 스케줄 탓인지 비행기 탓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한항공, 아시아나라도 타고 싶다. 스카이스캐너로 가장 싼 항공권을 찾던 여자가 일주일 만에 180도 변했다. 쓸 데도 없다고 쳐다도 안 보던 마일리지 적립 카드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니면 내가 엄청 유명한 작가가 되어 제발 필요한 경비는 다 대드릴테니 여행 가셔서 좋은 글만 써달라는 제안을 받는 상상도 해 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이젠 비즈니스석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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