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여름에 제주도 열흘 살기를 계획했던 터라 ‘테니스’라는 계획을 일정에 쏙 넣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미 부여를 좋아하는 나는 ‘가족 테니스 전지훈련’이라고 거창하게 이름까지 지었다. 야자수가 보이는 제주도에서 예쁜 옷을 입고 테니스를 치는 상큼하고 싱그러운 가족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휴가 계획은 없었다.
숙소가 있는 표선에서 가까운 테니스장을 알아보니 여름 내내 보수공사를 한다고 하였다. 급하게 찾은 곳은 차로 40분이나 가야 하는 서귀포 테니스장이었다. 모름지기 전지훈련이라 하면 매일 아니면 최소한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운동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가까운 거리라면 매일 아침 테니스를 치며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음이 살짝 아쉬웠지만 이것은 크게 신경 쓰일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치든 점심에 치든 저녁에 치든 테니스만 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대망의 훈련 1일 차. 제주도에 와서 바다도 한번 안 보고 테니스장부터 가는 우리 가족을 스스로 대견해하며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훈련 전 10분간 포토 타임도 즐겼다.
그러나 전지훈련을 흉내라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와 테니스는 같이 시작했지만 각종 운동 경력이 꽤나 화려한 남편과 테니스를 치니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자기야, 공을 나한테 보내줘야지.”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내가 공을 마음대로 보낼 줄 알면 선수하고 있지. 이러고 있겠어? 그리고 자기도 나한테 공 똑바로 안 주는데 나는 말 안 한 거야.”
운전 연수는 남편한테 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나는 운전 연수만 아니라 운동도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속으로 백만 번 정도 외쳤다.
물론 실력 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의욕만 앞서 날씨를 고려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여름이니까 실외는 너무 뜨거울라 생각해서 실내 테니스장을 예약했지만 그곳에는 달랑 선풍기 1대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오후 2시, 아침부터 뜨거운 햇빛을 축적한 실내 테니스장은 열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한증막보다 더한 곳으로 우리는 스스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초보라서 공을 치는 것보다 공을 줍는 시간이 더 많은 우리는 10분 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서로에게 날 선 말을 할 뿐이었다.
분명 제주도 올 때까지는 테니스 가방이 신상 명품 가방 부럽지 않았다. 이 시기가 나의 테니스 실력을 높여 줄 거라는 믿음까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허세와 열정은 어디 간 채 당장 에어컨 빵빵한 학원으로 달려가 선생님이 잘 받아주는 공을 치고 싶을 뿐이었다.
2시간의 시간이 아쉬울 줄 만 알았던 우리는 끼익끽 거리며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선풍기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터벅터벅 테니스장을 나서는데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쳤다.
“어? 밖이 더 시원하다.”
“우리 지금 생고생 한 거야? ”
“풉. 여기까지 와서 무슨 훈련이냐. 이 근처에 줄 서서 먹는 파전 있대. 그거나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