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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알고리즘

거부할 수 없는 힘.

by try everything

검색창에서 관심 가지고 검색했던 물건이 어느새 인스타그램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유튜브에서 몇 번 보았던 영상 속 관련 물건이 검색창 배너에 자주 뜨는 것 같다.

기분 탓인가? 눈앞에 알짱거리는 탓에 한 번 더 클릭해 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섭다. 1984(조지오웰)의 '빅브라더'가 바로 이것인가? 컴퓨터와 나, 우리만의 비밀이었는데(비밀이랄 건 없지만) 온라인 속 세상은 나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호객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알고리즘이란다. 요즘엔 이것으로 돈도 벌고 한다지. 알고 있어도 때론 두렵기만 한 알고리즘 세상이다.






1월 문화의 날에 빌려온 14권의 책이 책꽂이와 책상을 뒤덮었다. 문화의 날 파격 혜택으로 도서 대출권수가 2배였다. 1+1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는 여자는 홀린 듯 가득 담아 온다. 욕심쟁이다. 집에 돌아와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고 온수매트가 틀어진 뜨끈한 침대 속으로 폭 들어간다. 편성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는다. 나도 그런 글을 쓰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날개부터 찬찬히 읽는다. 이곳에는 보통 저자 소개와 메일주소, 인스타그램 등의 SNS와 출간 저서가 적혀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와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지었다는데 제목부터 읽고 싶다. 이 작가는 내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하고 책까지 썼네,라는 부러움으로 다음에 읽겠다며 간단하게 사진을 찍어 내 두뇌 대신 핸드폰에 저장해 둔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읽는다. 39쪽 밖에 안 읽었는데 또 사진을 찍게 만든다. (또 나 대신 기억해 주라.)


요즘 입심 좋고 개성 강한 작가를 거론할 때 김혼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누구보다 글 욕심이 많았던 김혼비는 바쁜 직장 생활 틈틈이 글쓰기 강좌에 나갔는데 '쓸데없는 말장난이나 비유가 많고 만연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태생적 유머 감각을 억누르려고만 했던 그 글쓰기 강좌를 끝까지 이수했더라면 우리는 이런 멋진 글을 못 읽게 되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중

너무 궁금해진다. 김혼비. 밀리의 서재를 열어 김혼비를 검색하니 '아무튼, 술'이 나온다. 요즘 아무튼 시리즈가 많던데 이것을 썼구나. 나는 '아무튼, 테니스'를 한번 써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읽기를 눌러 읽는다. 수능 백일주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나의 추억도 되살리며 금세 빠져들게 한다. 만화책도 아니고, 예능도 아닌데 깔깔 웃게 만든다. 거실에서 수학 문제집을 푸는 딸에게 방해될까 진지하게 책을 읽고 싶은데 웃음이 삐져나와 기어이 소리를 낸다.


"엄마, 뭐 봐?"

"큭.. 크.. 책...(흠흠)"

헛기침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웃음 또한 재채기와 같아서 멈춰지지 않는다.


'쓸데없는 말장난이나 비유가 많고 만연체'라는 지적을 받은 이유를 알겠지만, 그래서인지 재미가 있다. 결국 술 생각이 간절하여 나초에 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대단한 작가다. 글 하나로 독자를 푹신한 침대에서 일으켜 냉장고까지 걸어가게 하고 과자와 맥주를 꺼내 내일은 월요일이니 술을 마시지 않겠다 생각한 나를 움직여 마시게 했으니 말이다.







책을 읽겠다고 빌려와 놓고 책 속 한 줄에 꽂혀 읽던 책은 미뤄두고 유튜브를 유랑하는 것처럼 책을 타고 돈다. 자발적 알고리즘이다. 유튜브 A영상으로 시작한 것이 A-5쯤이 아니라 D까지 가는 것처럼 오늘 편성준 작가의 책으로 시작한 것이 김혼비 작가에서 '맥주 마시기'로 갔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기어 들어갔다는 것과 즐거웠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내일은 책날개에 적혀있던 책부터 시작해야겠다.

내일은 어디로 흘러가려나? 흥미진진하구만.

레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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