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시간 동안 나의 진로 이야기를 전하면, 고맙게도 많은 학생이 공감하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게 고민 끝에 진학하신 체대에서는 대체 뭘 배워요?”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경험하는 체육 시간은 그저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나가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봐도, 체육을 ‘공부’하는 시간은 시험 기간에 이번 학기 처음 펼쳐 보는 교과서에서 선생님이 짚어주는 부분만 훑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학생들에게 ‘체육대학’이라는 것은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체육 시간을 좋아하던 친구들에게는 ‘가서 운동이랑 스포츠만 하면 되는 곳인가?’ 하는 기대감을, 체육을 싫어하던 친구들에게는 ‘또 운동하는 시간의 반복이라고?’ 하는 두려움을 줄지도 모른다. 아마 이 시기에 체대에서 정확히 무엇을 배우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과 멘토링 시간에 (물론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어떤 과목을 통해 스포츠 분야를 학문적으로 접하게 되는지 학생들의 시선에 맞춰 현실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는 방법을 택했다.
‘체대’는 체육대학이라는 말 그대로 체육에 관한 이론적인 내용들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곳이다. 기본적으로 스포츠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을 다룬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평소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쳤던 스포츠 경험들을 조금 더 학문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먼저 짧은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팀의 훈련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훈련인가 싶다가도, 이내 화면에는 기이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관중이 꽉 찬 야구장에서 치어리더와 마스코트들이 북을 치고 장구를 돌리며 혼란을 주는데도 꿋꿋이 활을 쏘는 모습, 탱크 위에서 흔들림을 견디며 총을 쏘는 모습, 심지어 11미터 높이의 하이다이빙을 하거나 밤에 초소 근무를 하는 것까지.
처음엔 5점을 쏘며 당황하던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어느덧 소음과 공포를 뚫고 10점 과녁을 꿰뚫는 과정을 보며 아이들은 “아니, 저게 무슨 훈련이야?”, “말도 안 돼, 너무 웃겨요!” 하며 눈을 반짝인다. 나는 웃음기 섞인 아이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간다.
“방금 본 장면들, 단순히 재미를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전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훈련입니다. 바로 ‘스포츠심리학’이라는 분야와 깊은 관련이 있죠.”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졌지만,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결국 승패를 가르는 건 ‘0.1초의 찰나에 흔들리는 마음을 누가 먼저 다스리느냐’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심리적으로 무너지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부러 극도의 압박감과 소음을 느끼는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조절하고 집중하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수들이 실제 경기에서 불안과 긴장감은 낮추고, 담력과 집중력은 최대치로 끌어올려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심리 기술’을 공부하는 법을 배운다.
심리학이 승리를 위한 내면의 조절을 배운다면, 다음 과목은 그 승리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나는 화면에 사진 한 장을 더 띄운다.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선수가 일본 선수와 서로를 따뜻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여러분, 이 사진은 경기 시작 전일까요, 끝난 후일까요?”
아이들은 대부분 당연히 경기 직후인 것 같다고 답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진다.
“맞아요. 그런데 만약 저라면, 메달을 눈앞에 두고 격렬하게 겨룬 상대와 경기가 끝나자마자 저렇게 진심 어린 포옹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아이들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본다. 이때 나는 ‘스포츠맨십’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이번 과목 ‘스포츠철학’을 꺼낸다. 스포츠철학은 단순히 경기 규칙을 넘어서, 스포츠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배우는 학문이다. 공정성, 배려, 존중이라는 가치가 왜 스포츠에서 중요한지, 그리고 승패보다 더 큰 가치가 무엇인지, 왜 운동선수 포함 코치, 감독, 심판 등 다양한 스포츠인이 지켜야 하는지 그 철학적 의미를 탐구한다. 빛나는 기술과 결과 뒤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단단한 ‘철학’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시간이다.
이어지는 순서로는 조금 더 발칙한 질문을 던진다. 바둑판 앞에 고심하는 이세돌 9단의 사진과, 화려한 조명 아래 헤드셋을 쓴 페이커 선수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준다.
“여러분 생각에 둘 중에 진짜 ‘스포츠’는 무엇인가요?”
바둑만이 스포츠다, 이름부터 ‘e-sports’다, 둘 다 스포츠다, 둘 다 앉아서 하니까 스포츠가 아니다 등 교실 안은 금세 토론장으로 변한다. 잠시 후 나는 이야기를 정리한다.
“놀랍게도 스포츠의 정의는 예전부터 하나로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니에요. 사회와 시대가 변하면서 그 경계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땀 흘리며 몸을 움직여야만 스포츠라고 정의했지만, 이제는 e-스포츠 역시 당당히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되었다. 심지어 바둑 두는 AI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 역시 새로운 맥락에서 스포츠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포츠사회학’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스포츠가 우리 사회의 권력, 문화, 가치, 심지어 경제나 정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흥미진진한 과목임을 소개한다.
강의가 중반을 넘어가며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쯤, 나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보여준다. 개그맨 양세형 씨가 식당에서 식사하던 중, 옆 테이블 할머니의 목에 음식물이 걸린 위급 상황을 마주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방송 촬영을 하며 배웠던 ‘하임리히법’을 실시해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전해준다.
“방금 언급한 하임리히법이나 심폐소생술은 이렇듯 일상에서도 중요하지만, 몸을 직접 쓰고 자주 부딪히는 스포츠 현장에서 응급처치는 그야말로 필수입니다.”
나는 전공 수업 시간에 직접 붕대를 감고 부목을 대던 실습 사진, 그리고 아이싱(얼음찜질)을 하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아이들은 이론보다 실제로 진행하는 실습 사진에 신기한 듯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응급처치는 ‘치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지식 없이 섣불리 치료하려다간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응급처치의 진정한 목적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현재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법에 대해 철저히 배운다고 알려준다.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제대로 알아야 응급처치도 정확하게 할 수 있겠죠?”
그렇게 연결되는 과목이 바로 ‘인체해부학 및 기능학’이다. 우리 몸의 뼈가 어디에 몇 개가 있는지, 인대와 근육이 어떤 원리로 움직여서 우리가 걷고 뛸 수 있는지 그 정교한 설계도를 공부하는 시간이다. 어디를 다쳤을 때 왜 특정 동작이 힘들어지는지 이해하려면 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그래야 나아가 우리 몸의 에너지 시스템을 다루는 ‘운동생리학’이나, 움직임의 물리적 원리를 분석하는 ‘운동역학’ 같은 심화 과목들로 지식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소개한 과목들이 체대 공부의 전부가 당연히 아니다. 학교마다 커리큘럼은 조금씩 다르지만, 스포츠를 어떻게 잘 가르칠지 고민하는 ‘스포츠교육학’이나 ‘체육교육’, 스포츠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규칙을 다루는 ‘스포츠법’, 그리고 구단이나 협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배우는 ‘스포츠행정’ 같은 과목들도 있다. 이처럼 체육대학은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스포츠라는 거대한 세상을 입체적으로 탐구하는 곳이다.
이론 공부가 이렇게나 많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체육대학’인 만큼, 직접 몸으로 배우는 실기 수업이야말로 체대의 꽃이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개설되는 종목 역시 다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축구, 농구, 배구 같은 구기 종목부터 테니스, 수영, 골프, 무용, 심지어는 수상 스포츠나 스키 같은 계절 스포츠까지 정말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
이론 수업에서 배운 심리학을 경기 중에 적용해 보거나, 해부학에서 배운 근육의 쓰임을 실전 동작에서 직접 느껴볼 수 있다. 머리로 배운 지식이 몸의 감각과 만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체대생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인 배움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하며 우리는 단순히 ‘운동선수’ 이상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체육대학에서의 배움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진로로 이어진다. 현장에서 선수들을 포함한 사람들을 직접 지도하는 스포츠지도사(생활, 전문, 노인, 유소년, 장애인)는 물론이고, 몸의 재활을 돕는 건강운동관리사나 선수 트레이너도 있다. 게다가 마음을 치유하는 스포츠심리상담사, 그리고 안전을 책임지는 인명구조요원까지.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영의 중심인 프로팀 사무국, 연맹이나 협회의 행정직, 미래의 스포츠인을 길러내는 체육 교사, 깊이 있는 연구를 이어가는 대학원 혹은 연구원까지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정말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서 스포츠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체육대학은 단순히 몸만 쓰는 곳이 아닙니다. 스포츠라는 거대한 세상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전문성을 찾아가는 곳이죠. 이곳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다양한 과목 수업을 들어보면서 여러분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길을 발견해 보세요. 듣다가 재미있는 과목이 생기면 점점 심화 과목을 수강하면서 더욱 깊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와 함께할 여러분의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눈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