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등을 박박 밀렸던, 그럼에도 목욕 후 먹는 야구르트의 맛을 못 잊어 다음에 또 가게 되던 마성의 장소. 지금까지 목욕탕에 간 횟수를 헤아려 보면 족히 몇 백 번은 될거다. 하지만 코로나가 성행하던 근 몇 년은 목욕탕에 발길을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간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동네 목욕탕을 두고 차로 20분 걸리는 목욕탕에 갔다. 중학생 때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담임선생님을 만나 서로 민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아는 사람을 맨몸으로 만나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동네를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첩보 작전처럼 찾아간 목욕탕은 대낮인데도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 내가 알거나 나를 알아볼 사람이 없다는건 다행이었다. 이제는 야구르트를 몇 개씩이나 내돈내산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기에 나를 위한 바나나우유와 엄마를 위한 포도봉봉을 사 들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의 규모가 꽤 큰 편이었기에 사람이 많아도 자리는 넉넉했다. 나는 구석을 선호하기에, 단번에 구석 자리를 찾아 목욕용품을 놓음으로써 자리에 대한 영역 표시를 끝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온탕에 몸을 담그니 따스함이 나를 감쌌다.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서 '이 맛에 목욕탕 오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탕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임산부의 권장 반신욕 시간은 15분 정도였기에, 아쉬움을 한바가지 가득 채워 욕탕을 나왔다.
자리로 돌아와 바나나우유를 쪽쪽 빨아 마신 후, 몸을 때 빼고 광 내는 일에 공들이는 한편 대충 샤워하고 나가 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아마 혼자 왔으면 벌써 나가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있었을텐데,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들어와 일찌감치 나가는건 어림 없는 소리다. 엄마가 세모눈으로 보며 제대로 안 씻었다고 나를 주저 앉힐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찍 나갈 생각일랑 마음에 고이 고이 접어두고 엄마와 담소를 나누며 등을 밀어 주거니 받거니 하면, 그래도 피부가 맨질맨질하고 온몸이 개운해진다. 이 시간을 온전히 때 빼고 광 내는 일에 몰두했음에 약간의 성취감마저 든다.
그래, 이 맛에 목욕탕 오지.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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