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일하고 휴직한 사람의 생활은 어떠한가, 일단 돈이 없고 시간은 많다. 한가롭다 못해 심심하다. 워낙 혼자서도 잘 노는 성격이지만, 잉여 생활이 수개월 지속되면 누구 나를 만나줄 사람 없을까 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된다. 특히 대낮에는 근교의 공원이라도 걸으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근교에 육아를 하고 있는 몇몇 친구들이 살고 있기에, 담소도 나누고 육아팁도 전수받을 겸 중학교 동창생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는 두 돌 된 딸을 가정보육 하는 중이다. 요즘은 돌 지나면 어린이집에 보내는 편이라 주변에서 가정보육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라떼는 다섯 살 즈음부터 어린이집에 갔던 것 같은데, 하긴 맞벌이 가정이 많기 때문에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점심 무렵 그녀의 집을 찾았으니 가는 길에 피자와 스파게티를 사서, 그녀의 집 식탁에 펼쳐놓고 먹었다. 이제 어지간히 말귀를 알아듣는 그녀의 딸은 연신 내 옆에 와서 장난감을 자랑하고 춤을 추었다. 급기야 변기모형의 장난감 위에 올라가서 춤을 췄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 안그래도 볼록 나온 배를 움켜잡고 한바탕 웃었다.
아기가 낮잠을 잘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이 배불뚝이 방문객과 놀고 싶어 무리를 했나보다. 아기는 이제 코 자자고 데리고 들어간 친구의 품에서 으앙, 으앙 울기 시작했다. 친구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참동안 아기를 다독여 주었다. 내가 어렸을 적 식당을 하던 엄마가 일을 하면서 잠투정으로 칭얼대는 나를 업고 '으응, 우리 아가 졸려서 그렇구나.' 하고 다독여주던 기억이 스쳤다. 일하면서 아기 잠투정 받아주는 일이 얼마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지 그때의 나는 모를 일이었다. 새삼 엄마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에 코 끝이 찡해졌다. 이래서 아기를 낳아봐야 엄마의 노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겠지.
가까스로 아기를 재우고 친구와 나는 다시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부터, 20대 때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각자의 직종에 대해서, 그리고 육아까지... 중학교 동창이라 알고지낸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일 년에 한 번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났던게 전부여서 온전히 둘이 대화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친구는 제빵의 길을, 나는 교직의 길을 걸었기에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그녀와 나눈 진솔한 대화로 마음은 그득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 손은 예비 엄마인 나를 위해 그녀가 챙겨준 앙증맞은 아기용품들로 가득했다. 한가롭게 친구와 담소를 나눌 수 있었던 오늘의 대낮을, 소중한 날을 마음에 새겨두어야지.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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