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 필요해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by 우스갯소리

나는 선천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재난 상황으로 간주해, 안방을 벙커 삼아 손님이 일어나실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커가면서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먼저 말을 거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나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이들과 친해지는 일은 웬만한 넉살을 장착하지 않고서야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 필리핀 오지 마을까지 도움이 되어보겠다고 가서, 사람이 두려워 쭈뼛거리는 모양새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게 나의 작지만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런 나의 소망이 이루어진건지 아이들은 내가 쭈뼛거릴 새도 없이 먼저 다가오곤 했다.


마을에 학원이란 곳이 없으니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산에서, 길에서, 학교에서 놀았다. 수업이 있든 없든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왔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가 학교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주변에 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기만 해도 꺄르르 수줍게 웃었고, 우리가 그들을 알아보기 전에 늘 먼저 인사하곤 했다. 애써서 좋게 대하는게 아니라 그냥 좋아한다는게 느껴졌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 어른들까지 그곳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참 좋아했다. 단지 아이들은 비교적 가까운 곳까지 와서 이름도 묻고 하이파이브도 하지만 어른들은 먼 발치에서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대단한 무얼 안해도, 심지어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눈에는 하트가 보였다. 필리핀에 눌러 앉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해도 예뻐라 하는 상황은 유아기 이후로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 주는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랑을 베풀기 위해 온 내게 "우리가 이미 당신을 사랑해."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거창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애정으로도 마음에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나도 모르는 새에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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