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날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대하여

by 따뜻한 법

늘 어딘가 불편한 회식 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A씨는, 모처럼 아무 말 없는 저녁을 보내려 했습니다. 괜찮은 하루였고, 피곤한 몸을 잠시 눕힐 시간도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식탁 위 조용한 그릇과 의자 하나 빈 풍경 앞에서, 그는 문득 스마트폰을 들었습니다. 특별히 누군가를 부를 것도 아니면서, 괜히 메시지함을 열어보고, 통화기록을 넘겨보는 일.

그저 누가 있는지만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그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스스로를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날 그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내려두었습니다. 대답은 없었지만, 어쩌면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을지 모릅니다.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으면, 바깥의 소음이 더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시곗바늘이 뚝뚝, 작은 소리로 시간을 밀어내고, 엘리베이터의 멈춤 소리, 옆집 아이의 울음도 문틈을 타고 스며듭니다.

고독은 흔히 정적 속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정적은 늘 바깥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서서히 피어오릅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 외면한 기억, 한 번도 표현해본 적 없는 갈망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공유합니다.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을 거의 비슷한 시점에 느끼고, 고립을 감지하는 감각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사회적 통각’이라 부릅니다. 타인의 존재를 추측하고, 그 감정을 해석하며, 그 안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조심스럽게 읽고, 조용히 기대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사실 내가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내가 떠올려지는 존재인지, 나 없이도 나를 말해줄 사람이 있는지.

그런 마음은 말보다 기척으로 남습니다. 손끝이 멈추는 타이밍, 메시지를 보냈다가 지우는 습관, 발신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꺼내든 이름 하나.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혼자가 좋아요", "마음 편해서요". 하지만 그 말은 언제나 완전한 진심은 아닙니다. 혼자인 것을 견디는 연습과, 누군가로부터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조용히 흔들립니다.



언어는 뇌의 한쪽에서만 만들어집니다. 나머지 절반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각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말로 설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갑자기 떠오른 이름,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 이유 없이 보고 싶은 얼굴.

사람은 누구나, ‘보고 싶다’는 말보다 ‘잘 지내?’라는 말을 택합니다. 감정보다 구조가 더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심은 늘 한 발 뒤에서 기다립니다.



도시의 저녁이 내려앉고, 유리창마다 불빛이 켜지는 시간. 각자의 방에는 말해지지 않은 수많은 고독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은 언제나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누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사람의 부재를 감각할 사람이 있을까.

그 질문은 오래 머뭅니다. 빠른 답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 그 기억만으로, 오늘을 조금 덜 외롭게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지만, 어쩌면 기억이라는 말이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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