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함이란 무엇인가요

by 따뜻한 법


어떤 날은 커피 한 잔이 나를 살게 하고, 또 어떤 날은 그 한 잔이 무겁기만 합니다. 아침 햇살이 고맙게 느껴지던 날도 있었고, 같은 햇살이 눈부시게 피로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삶이란 그렇게 고정되지 않고, 늘 조금씩 흔들리며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 작은 흔들림 앞에서 ‘적절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 이 감정은 적절한가, 이 선택은 지나치지 않았는가. 그것은 결국,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자아는 때때로 우리를 속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이미지는, 실제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정형화되어 있지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나를 유지하려 애쓰게 되고, 그 변화 앞에서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데, 마음은 과거를 붙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자아에 매달릴수록 현재는 흐릿해지고, 오늘의 시간은 불만족스러워집니다. 그것은 마치,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고집스레 입고 다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욕망을 버려야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욕망을 억제하는 것을 미덕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지나친 억제는 삶을 삭막하게 만들고, 결국 또 다른 방식의 욕망으로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적절함이란 그런 의미에서 균형입니다. 커피 한 잔의 향처럼, 가볍지만 선명한 만족감. 그것은 어떤 절제나 금욕보다도 더 깊은 충만을 줍니다.

하지만 열 잔의 커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똑같은 향인데도 불쾌해지고, 심장이 빨라지고, 정신이 흐려집니다. 욕망 그 자체보다, 그 욕망이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감각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 감각은 누구도 대신 정해줄 수 없습니다. 커피든, 대화든, 침묵이든. 오늘의 적절함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도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조금씩 나를 살펴야 합니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느끼는 피로는 무엇 때문인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멈추고 싶은 것인지.

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곧, 스스로에 대한 예의입니다.



시간은 그 자체로 감각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을 ‘지금’이라고 느낄 때, 사실 우리는 이미 아주 짧은 과거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뇌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측을 조합해 지금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약간은 어긋난 현재를 살아갑니다. 현재라는 시간은, 완전한 실체라기보다 우리가 느끼는 인식의 틀 안에서 형성된 감각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도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풍경이 어떤 날은 외롭고, 또 어떤 날은 충만한 이유입니다.



감정은 해석입니다. 들리지 않은 음악, 지나쳐간 글자, 오래전 누군가의 말투까지도 우리 안에 남아, 오늘의 감정에 섬세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곧 행동이 됩니다.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묻는다면, 우리는 종종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감각의 층위들이 그 결정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확실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적절함이라는 기준은 더욱 소중해집니다. 그것은 감정의 조율이며, 내면의 균형입니다. 스스로를 잘 이해하려는 반복적인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것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욕망도, 기쁨도, 불안도 그렇습니다. 오늘 너무 뜨거웠던 마음도, 내일은 서늘하게 식을 수 있습니다.

적절함은 그런 일상의 미세한 변화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달라진 마음을 인정하고, 필요한 만큼만 안아주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자주 그 정도를 모릅니다. 너무 많이 주거나, 너무 오래 붙잡거나. 하지만 자주 들여다보면, 마음은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스스로를 잘 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그 흔들림을 따라 유연하게 흐를 줄 아는 감각. 그것이 적절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머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에 머물러 있나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 적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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