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참고 견뎌줘서 고마운 당신
오늘은 참 가족들이 미운 날이다.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듣지 않는 아들과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는 남의 편까지. 너무 밉다.
종일 닌텐도를 붙들고 있는 아들도 그런 아들을 혼낼 생각 없이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을 하는 남편도.
나는 바쁜 저녁이면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의 숙제와 공부를 봐줬으면 좋겠다.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다정히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걸 바라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한다. 이기적인 요구라고, 아니 불가능한 요구라며 내 입을 막아버린다.
회사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는데 그래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아니 기대를 버렸다. 포기했다. 남편은 월급을 벌어오는 것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하므로. 이게 맞는 건가? 전업주부의 자존감은 또다시 바닥을 친다.
내가 하는 가사노동 + 육아 = 남편의 회사일이라는 등식이 확고한 그에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입이 막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신생아 시기가 힘들었다. 잠을 못 자 힘들었고 남편이 어느 정도 육아에 참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과 기대가 있어 힘들었다. 몇 번의 큰 부딪힘이 있었고 가장 비겁하게 입을 닫았다. 포기했다.
남편은 내 기준에서 참 짜증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늘 나의 많은 부분을 참고 사는 것처럼 말한다. -물티슈 뚜껑을 덮지 않는 일 같은, 또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것도- 나도 나의 나쁜 습관을 알기에 10에 7번은 신경 써서 챙기다.
나머지 3번에 대해 보통 남편도 별 지적 없이 넘어간다. 그러다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많았거나, 숙취로 고생하거나 아이가 말을 안 들었거나 등등의 요소가 겹치면 바로 사나운 짜증의 말 또는 비꼬는 말이 튀어나온다.
나라고 싫은 게 없을까. 비흡연자는 냄새도 꽁초도 모든 게 싫은데. 더러운 습관도 지나친 장난도 다 싫은데 나는 표현을 안 하는데 당신은 왜 서슴없이 짜증 내고 비꼬고 날카롭게 말할까.
아! 전에 "나도 당신의 이런 이런 걸 참아"라고 얘기했더니 바로 참아 배틀이 시작됐다. 남편은 나도 이런 이런 이런 거 참아라고 대꾸했고 또 내 입을 막았다. 그때 생각했다. 저렇게 내 모든 행동을 참고 살아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못 참을 때는 주저 없이 비꼬고 짜증 내고 상처를 주는구나.
왜냐하면 그의 입장에서 숨 쉬듯 나를 참아내고 있으니까. 아침밥을 안 차려주는 것도 참는 거고, 주말에 늦잠 자는 것도 참아주는 거고 또 뭘 참아준다고 했더라.
어쩌면 남편은 날 잘 길들였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부부간에 기선제압하는 자신의 노하우라며 훈수를 들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억측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왠지 그럴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은 모른다. 마음 한구석을 베어낸 아내의 헛헛함을. 아마 평생 모르고 살 거다. 이게 그의 한계이자 나의 최선이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표가 난다는데 정말 그럴까. 이 점에서 늘 나비에게 죄책감을 갖게 된다. 너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렵다. 이런 두려움을 함께 나누고 걱정하고 극복해 나갈 전우가 없어 무섭다. 홀로 서있는 느낌이다. 남편은 육아에 있어 지금까지 방관자였다. 아! 그래도 가끔 아이를 씻겨주고.. 같이 tv를 보고 게임을 한다. 또 아이와 뭘 했더라? 아 짜파게티를 끓여준다. 외출해서 남자화장실을 데리고 간다. 약간의 짜증과 함께.
그리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나와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오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불편함 없이 할 수 있게 해 준다. 매우 너무 감사한 일이다.
감사하다. 나를 참아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