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그리고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

"백석평전"을 통해 알게 된 백석의 삶과 백석의 그녀 자야

by 클레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여타 유명한 시 작품들, 그리고 수려한 외모의 시인이었다는 것이 내가 백석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이 정보도 그나마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웠던 백석의 시를 통해서였고, 그 이후에는 그의 존재에 대해 잊고 살았다. 그래서 <백석평전>을 통해서 처음으로 백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그의 삶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많았는데 위대함 반, 실망감 반이었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책 <백석평전>


뮤지컬에서의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뮤지컬은 시간이 흘러 노년이 된 '자야'가 매일 환상처럼 찾아오는 '백석'과 함께 그와의 추억이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스토리라인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래서 스토리 자체는 너무 단순하고 큰 서사는 없지만, 넘버가 좋아 계속 맴돌기도 했고 자야의 시점으로 극을 보다 보니 자야에게 많은 이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석의 삶을 너무 편파적으로만 본 것 같아 백석에게 오해를 할 뻔 했다.


이번에도 베르테르와 마찬가지로 뮤지컬을 먼저 보고 <백석평전>을 읽었는데, 뮤지컬을 보는 내내 백석의 여성편력은 나를 화나게 했다. 초록색 수트를 입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시만 쓰는 베짱이처럼 보였고, 자야를 혼자 두고서 예전부터 사랑했던 통영 사는 박경련에게 다녀온다거나, 부모님때문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결혼을 하고 한참 뒤에 자야에게 돌아와서 밥을 찾는다거나 하는 모습은 가히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자야 뿐만 아니라 문경옥과 같은 다른 아내에게까지 상처를 준 것만 같아 같은 여성으로서 참 마음이 아팠다.

몇 달 전 운 좋게 본 CJ아지트 리딩 공연 <라흐헤스트>에서도 이상이 등장하는데, 이상 또한 동림에게 고백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한지 3개월 만에 시를 쓰고 싶다며 동림을 두고 동경으로 떠나게 된다. 공교롭게 이상의 그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이 시기의 문학인들에게 이 정도의 감정의 파도는 당연한 것이었나 생각도 들었다.


백석덕후가 쓴 <백석평전>에서의 백석

그렇게 잔뜩 백석에게 화가 난 채로 집에 돌아와서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평전>을 읽었는데 그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시인 외에 선생님, 번역가, 아동문학가 등 그에게는 여러 범주의 직업이 있었고 꽤 건실하게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흔들릴 법한 일제시대에 무력으로 싸우진 않았더라도 일본어를 쓰지 않는다거나 작품을 쓰지 않는 등 그만의 방법으로 일본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는 그를 '탈북작가'로 칭하지만, 그는 이념이나 사상때문에 탈북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의 고향이었고 가족이 있는 정주에 살고 싶어 북한으로 가게 된 '재북작가'였다. 북한에 가서도 북한의 사상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만의 신념으로 살아가다가 펜을 놓고 양을 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제일 뒷 쪽에 있는 노년의 백석 가족 사진을 봤을 때 그의 주름과 표정에서 삶의 시련을 느낄 수가 있었고, 어린 시절 꿈 많아보이던 백석 사진과 참 대조적이라 가슴이 아려왔다. 물론 <백석평전>에서도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하기는 하고 뮤지컬에서의 이야기가 팩트는 맞지만, 뮤지컬에서 다뤘던 것보다 백석은 훨씬 더 대단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백석과 자야


<백석평전>을 읽으면서 정말 안도현 시인이 엄청난 백석 덕후였던 듯 싶다. 나도 여러 덕질을 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유년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파고들고 그의 삶을 옹호해주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뮤지컬을 볼 때엔 몰랐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백석이 그런 존경받을 인물일 수 있음을 이 책을 덮으면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뮤지컬 또한 그만의 매력이 있었다. 뮤지컬 제목만 보고는 백석의 위인전이 아닐까도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또다른 백석덕후인 자야의 시각, 전지적 '자야'시점에서 백석을 바라보는 이야기였던지라 참신했다. 게다가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게 기억된다고, 노년의 자야의 기억 속에 자리잡았던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백석의 시 중 좋은 시구를 넘버 가사에 녹인 것도 참 좋았다. 이 뮤지컬이 더 많은 참고를 했다는, 자야가 쓴 <내 사랑 백석>도 꼭 읽어보고 싶다. 어찌됐든 간에 백석을 향한 자야의 일편단심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마음인 것 같다.


자야, 당신의 마음은 늘 고귀했어요.

(feat. 연극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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