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같았던 청년, "태일"

내일이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더 행복해졌어

by 클레어

첫 넘버를 부른 뒤, 태일 목소리와 태일 외 목소리의 두 배우가 전태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스몰토크로 시작하는 음악극 <태일>. 사회 노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비슷하게 그를 기억하고 있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영화에서 홍경인 배우님이 연기하셨던 전태일, 그리고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분신 시위를 펼쳤던 전태일.

나 또한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근로기준법 책을 안고 불 속에서 사라진 전태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이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했다. 음악극 <태일>과 전태일평전을 읽기 전까지는.


뮤지컬 <태일> / 책 <전태일평전>


불꽃보다 촛불같은 사람

음악극과 책에서 만난 태일은 그저 정의의 사도만이 아니었다. '분신을 서슴치 않은 열사'라는 이미지가 임팩트있게 후대의 사람들에게 박힌 것일 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 또한 너무나도 시련이 가득하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 재봉사가 된 이후는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고 해도 과거에 비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다와 다른 재봉사, 재단사 등 그의 주변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도 꿈을 펼치지 못하고 시장 안에서 고생하는 것들을 지켜봐오면서, 태일은 그들에게 더 나은 생활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태일은 세상을 뒤바꾸겠다는 커다란 대의적인 목표가 있기보다는 자신의 사람들이 편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랐던 마음에서 마지막 선택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정원 태일목소리의 경우, 마지막 시위를 나가기 전 책상에 앉아 괴로워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데, 그 모습이 '정말 이 길 뿐인가, 이렇게 하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하는 태일의 고뇌가 담긴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팠다. 밥 한 끼 못 챙겨먹는 아이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본인은 먼 길을 걸어 퇴근하고, 시다 친구들의 일도 도와줬다는 이야기들을 보며 그는 불꽃처럼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촛불처럼 따뜻한 사람에 가까웠다.



음악극 VS 평전

극을 먼저 보고 책을 읽어보니 극 내 대사나 가사도 태일의 말이나 편지에서 많이 인용을 해서 <태일>의 창작진 분들이 평전을 많이 참고하고 차용한 것 같았다. 태일의 아버지가 운동회 때 바지를 만들어주거나 서울로 올라가 우산을 팔던 태일을 함부로 대하던 여자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잘 담았고, 권리를 위해 투쟁한 태일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청옥 학교 시절 때의 행복했던 태일의 이야기도 그렸다는 것도 사람으로서의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많이 나옴에도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극으로 장르를 지칭한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노래가 아니라 목소리에 포커스를 두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뮤지컬 넘버로 표현되다 보면 멜로디에 묻혀 넘버 가사의 의미를 뒤늦게 파악할 때도 더러 있는데, 태일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관객이 집중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이 극이 없었다면 내가 전태일에 대해서는 그저 역사적인 인물로만 기억할 뿐 더 이상 많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고, <전태일평전>은 더더욱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전태일의 생각과 그의 본디 모습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어 창작진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회사원이 되어 노동자가 된 지금,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전태일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그는 불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촛불이 되어 근로자들을 따스하게 비춰주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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