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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순응 (3)

무기력이 햇살보다 익숙해졌던 날들의 기억

by 희소

내 정신을 깨운다. 언제 잤는지 따위는 알 필요도 없다. 아직은 굳어 멈춘 온몸의 감각들을 하나하나 머리로 받아들여 느낀다. 팔의 존재를 무겁게 느끼고, 머리에서 다시 내보내면 이번에는 다리와 등짝의 존재가 침범한다. 내 몸에 달린 여러 존재들의 감각이 내 작은 몸뚱아리를 확장시킨다. 이 모든 찰나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멈춰있던 시간을 느낀다. 눈을 감은 언젠가부터 동결되어 있던 시간들, 꼬여있던 그 시간들이 탁 풀리며 저마다의 위치로 힘 있게 되돌아간다. 몇 가지의 시간들이 내 이마에 부딪혀 확산하고, 그제야 어두워진 방 안이 눈에 담긴다. 감각적으로 휴대폰을 낚아채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런 일련의 의미 없는 행동들은 내가 사회에 아직이나마 묶여있을 수 있도록 날 단단히 붙들어주는 목줄과도 같다.


해가 떠있는 하늘은 내 시간에서 좀처럼 머무르지 않는다. 두 번 혹은 세 번의 불규칙한 수면에 빠져있는 동안 낮의 대부분이 거칠게 접히고 압착된다. 그 시간의 질감이 주는 불편하고 거친 마찰감을 애써 모른 체하기 위해 기지개를 최대한 요란하게 켠다. 지금은 아마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을 시간인 듯하다 곧 해가 지고 달이 더욱 빛날 것이다. 15일이니 예쁜 보름달이 뜨겠지. 달을 볼 때면 걱정이 사라지는 듯했다. 표면의 크레이터 또한 숭고함을 더해준다. 달에 그 흉 진 무늬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흉물이었을 것이다. 마치 흠결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는 듯 젠체하는 동그란 모습을 상상해 보면, 괜스레 달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들만도 하겠다. 밤하늘이 예쁜 이유는 흉 진 달과 그 사이에 불규칙적으로 뿌려진 별들의 존재 때문인 것이다. 별들의 간격이 규칙적이라거나, 매끈한 달의 표면을 가진 끔찍한 우주는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별이 참 좋았다. 어두운 하늘에 알 수 없는 힘으로 스스로를 지탱하는, 그 별의 빛들이 참 좋았다. 별빛에 멍하니 홀릴 수 있게 해주는 우주가 좋았다. 우주라는 대상은 신비한 다채로움을 품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주는 빛나지 않는다. 수많은 별들이 각자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뽐냄으로써 우리는 그 공허와 같은 우주의 어둠까지 빛난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주는 빛나지 않는다. 빛을 내는 것들은 그 개별의 별들이다. 우주 전체가 빛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그 빛들을 품고 있는 광활한 우주를 가지고 싶었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 칸에 천체과학자를 써내기도 했다. 빛나는 우주에 박혀 누군가의 별이 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공간을 유영한다면 그 별에 맞아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별은 가까이서 보면 그저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맞아 죽어도 좋다며 우주로 갔다가 전혀 특별할 구석이 없는 돌에 맞아 죽는다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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