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미 Oct 14. 2021

내가 랜선집사가 된 이유

Chevanon Photography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개'라는 단어만 들어도 조건반사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흐물거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를 꼽자면 개가 아닐까 할 정도로 개가 좋다. 좋아하지만 지금 개를 키우고 있지는 않다. 시골에 살 때는 조부모님께서 개를 키웠다. 개가 없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집에는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만큼이나 개 짖는 소리가 익숙했다.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개를 키우는 반려견과는 다른 개념이다. 평소에는 집을 지키고 뜨거운 여름에는 다른 목적을 위해 타의에 의해 살신성인해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흔히 똥개라고 불리는 개들이 집을 지켰는데 그 중에 누렁이는 초등학교 시절 내 친한 친구였다. 매일 1m 반경의 목줄에 매여 혼자 있어야 했던 누렁이. 나는 학교를 다녀오면 누렁이와 놀며 시간을 보냈고, 외로웠던 탓인지 누렁이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엄청난 점프 신공을 선보이며 나를 격하게 반겼다. 그게 정말 반겼던 제스처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8월 15일이 되었다. 마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얼른 달려가보니 누렁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랐지만 이미 한여름의 마을 잔치는 시작되고 있었고 누렁이는 내 눈앞에서 점점 작아지다 사라졌다. 아직도 누렁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갑자기 허망하게 사라진 누렁이. 그렇게 갈 줄 알았다면 목줄에만 묶어두지 않고 산책도 시켜주고 맛있는 고기도 챙겨줬을텐데, 너무 덩치가 커서 무서워했던 기억만 난다. 나는 매일 들판의 염소 데리고 오는 것만으로 버거웠으므로 개 산책까지는 무리였다. 그래도 좋은 기억을 내가 선물해주면 좋았을텐데 너무 미안했다.


나중에 부모님과 살며 잠깐 개를 키우기도 했지만 모두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개는 늘 혼자였다. 너무 외로웠던 걸까. 눈이 오는 겨울날 잠깐 현관문을 열어 두었는데 그 사이 개가 사라졌다. 동네를 뒤지며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운이 좋아 새주인을 만났으면 다행이지만 떠돌이 개로 힘들게 지내지는 않았을지 시간이 흘러도 그게 가장 마음에 쓰였다. 그러고나서는 지금껏 개는 키운 적이 없다. 개를 키울 자신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살면서 한달에 일주일은 야근에 출장을 가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봤을 때 개를 키우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여겨졌다. 내가 개의 입장이라면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리며 얼마나 외로울까. 밥도 썩 맛이 없을 것 같고 계속 창문만 보다 하루를 보낼 것 같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물론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나가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지만 회사에 있는 내내 마음에 쓰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개를 두마리씩 키운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과연 좋은 해결책일까? 사람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듯이, 개도 마찬가지일텐데. 만약에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개를 데려와서 둘이 싸우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또 너무 생각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개의 행동을 교정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 다른 개가 있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였다.


그런고로 언제부턴가 나는 인스타그램에 있는 시바견과 리트리버를 보며 힐링한다. 뛰어다니고, 목욕하고 자고 있는 사진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고기를 보며 군침 흘리는 영상이 그렇게나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울 수가 없다. 개에게 귀엽지 않은 행동이 존재할까? 막상 키우면서 내가 아끼는 옷을 뜯어놓으면 화가 날 것 같긴하다. 지금은 이르지만 아마 내가 컨텐츠 생산자로 자리를 잡으면 개를 키워도 될 것 같긴 하다. 매일 일상을 함께하며 운동도 갈 테니까. 개를 키우는 가정을 하니 펫로스증후군이 걱정된다. 내 성격상 가족처럼 생각하는 개가 죽으면 상실감에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남의 개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개를 한 번 키워보고 싶은데, 결심이 선다면 보호센터에서 입양을 해서 아픈 상처를 도닥여주고 싶다. 그게 하늘나라에 간 개들을 위한 나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