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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미 Jan 27. 2023

피어싱으로 통하였느냐?

버킷리스트 1

사진: Unsplash의 Cat Han


약 2주 전 세 번째 피어싱을 했다. 약 1년 전 양 귓불에 한 개씩, 이후 귓불에 하나 더 두 개가 되었다. 요즘 귀를 뚫는 일이야 일상다반사이니 특별할 일은 아니다. 그저 일반 귀걸이 대신 나는 피어싱을 했을 뿐이다. 뚫는 아픔이 사라지고 피어싱이 내 일부처럼 느껴질 때쯤 또 한 번의 피어싱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귓불에 뚫는 것과 귓바퀴와 이너컨츠에 뚫는 일은 천지차이처럼 느껴져서 망설여졌다. 무서워서 선뜻 뚫진 못하고 1년간 생각날 때마다 검색창에 '피어싱 아픈 부위 정도'와 같은 단어를 검색했다. 앞서 언급했던 귓바퀴와 이너컨츠가 통증 정도가 약한 곳에 해당했으나, 사람마다 아픔을 느끼는 부위나 통증 정도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없어졌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나에게 얼마큼의 고통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귀차니즘과 겁이 더해져 피어싱은 잠시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얼마 전 머리 염색을 하러 가는 길에 피어싱 가게를 발견했다. 피어싱에 대한 갈망이 생각보다 컸던 탓인지 '오늘 피어싱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라고 단정 짓고는 머리를 하자마자 가게로 들어갔다. 그나마 귓불 다음이 이너컨츠와 귓바퀴라고 해서 하나씩 뚫기로 했다. 피어싱은 손기술(?)이 중요하므로 누구의 손에 내 귀를 맡기는지가 중요하다. 관건은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고 덜 아프게 뚫느냐이다. 가게 직원 역시 귀에 거대한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많이 아픈가요?" "뚫을 때는 다 아프죠." 너무 당연한 걸 물었다. 이럴 때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맞아도 웃는 달인처럼. 마음을 다잡고 그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5분도 되지 않아 피어싱을 마쳤다. 이제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의 신체적 고통을 맛봤지만 그래도 참을만한 축에 속한다. 어쩌면 다음에 다른 부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가게를 나왔다. 아직 고통을 덜 맛본 것인지도.


누군가 나에게 왜 피어싱을 했냐고 묻는다면 아주 단순하게 '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내면을 충실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20대에 특히 더 움츠려 지냈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때 피어싱을 했다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쩔 수 없다. 그때는 여유가 없었다. 내 삶의 자세를 동작으로 표현한다면 지진이 났을 때 책상 안에 들어가 웅크린 자세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똑바로 세상 위에 서 있다. 나를 무엇으로든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쓰고, 피어싱을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금의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젊은 나에게, 어쩌면 내일 만날 수 없을 나에게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나이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으로 내 삶의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피어싱을 하는 것은 세상에 나로서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공식적인 업무 미팅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살짝 걱정되기도 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의 일에 충실하자고 다짐한다. 나보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나의 직관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랐기에 나는 이제껏 내가 원하는 것을 지레짐작으로 포기했다. 지나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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