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소통 기록
이 글은 Dable - Mago.works 팀 블로그에 게시한 글을 다듬어 재발행한 글입니다.
제가 UI/UX디자이너로 Zet팀에 합류하여 느낀 장점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저희 팀이 오버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오버 커뮤니케이션이 '사적인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인가?' 생각하며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적인 질문(나이, 출신, 개인사)을 묻지 않고 다양하게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우려가 기우였음을 알았고, 이것이 팀원을 배려하는 또 다른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소통 방식은 다양한 의견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대화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갖게 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원격근무로 각자 다른 자리에서 일을 해야하는 지금은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깨닫고 있는 지금, 저는 지금과 비교하여 어떻게 동료들과 소통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약 3년을 편집디자이너로 일했고, 그 이후 웹디자이너로 업무를 바꾸어 현재 UI/UX 디자이너로 8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필드는 다르지만 그간 디자이너로서 어떤 점에 집중해서 대화하려고 했는지, 어떤 다른점이 있었는지 회고해 보려고 합니다.
전공과 일치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편집디자인을 잘 한다는 것은 시각디자인의 기본을 잘 다진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편집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있어 큰 부수의 책자를 맡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인쇄감리를 보러 간 충무로의 한 인쇄소에서 담당자와의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인쇄 사고를 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오가는 인쇄 용어들을 처음 들어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손해를 보고 재인쇄를 해야했습니다.
인쇄업계는 과거에 일본에서 기기를 들여와 쓰기 사용한 탓에 아직도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들이 많습니다.
누끼(이미지에서 특정 오브젝트를 따기), 세나카(책등), 돈땡(같이 걸기), 돔보(맞춤선), 오시(종이가 터지지 않게 선을 눌러서 내주기), 미싱선(종이가 잘 뜯어지도록 실선 내기) …
이것이 한국어인지, 해리포터의 마법 주문인지. 낯선 용어들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용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류에 대한 특징, 후가공을 잘 이해하여,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쇄용어를 잘못 이해하거나, 제품을 완성하는데에 필요한 사양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서 인쇄 사고를 낸 적도 많아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자 주니어 디자이너였던 저는 업계에서 왜 이런 외래어를 사용하는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이러한 단어 사용이 업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것임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판, 인쇄 산업에서는 정시에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일분 일초가 급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서로가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여 실수 확률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렇기 때문에 “리플릿 가운데가 터지지 않도록 접는선을 하나 추가해 주세요.” 보다는 “중앙에 오시선 하나 추가해주세요.”처럼 업계의 일반적인 단어를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디자이너에서 웹디자이너로 전향한 후에는 디자인을 화면에 잘 띄울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 논의하는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습니다. 특히 나의 디자인을 화면으로 구현하는 개발팀과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html 태그의 이름부터 레이어 팝업 같은 기능 용어, parallax scroll 같은 인터랙션 관련 용어들을 차근차근 익혔습니다. 출판, 인쇄의 세계에서 월드 와이드 웹의 세계로 넘어오니 또다시 이 세계의 언어를 배워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가 미술시간에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서 수채 물감의 성질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나서 붓과 종이를 사용하는 것처럼, 웹디자이너도 화면 구현과 관련된 태그, 기술의 이름을 익히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자인 수정은 항상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개발팀에서 주시는 의견을 빠르게 이해하여 추가적인 수정이나 코멘트가 없이 바로 작업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가 이때 집중했던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배경 지식은 왜 이미지 에셋을 4배수로 만들 것을 권장하는지, 왜 오브젝트 사이의 간격이 정수로 떨어지게 해야하는지 등 화면 구성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어 디자인의 디테일을 잡는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UI/U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웹디자이너와 비슷해 보이지만 주어진 내용대로 화면 디자인만 했던 때와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프로덕트의 전체를 보며 디자인하고, 좋은 사용자 경험 플로우를 만들고 개선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개발팀이나 인쇄 공정 담당자같은 어느 대상을 정하지 않고 함께 프로덕트를 만드는 다양한 직무의 이들과 대화하는 것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개발 파트, 역시 빠르게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디자인 트렌드, CTA나 CPC같은 마케팅 및 비즈니스 용어, 데이터 분석 관련 용어 등 전문 영역에서 쓰이는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점점 제가 모르는 것들이 쌓여만 가는 기분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저는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때는 가능한 바로 질문을 합니다.
저 스스로가 물음표 투성이이기 때문에 반대로 제가 의견을 전달할 때도 가능한 충분하게 설명을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지 못하는 단어라고 생각이 되면 단어를 그대로 쓰기 보다는 풀어서 사용하고, 이전의 히스토리가 전달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상황에 따른 자료, 레퍼런스를 충분히 준비하여 주어진 시간 안에 미스 커뮤니케이션 없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회의의 경우에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 속에서 이야기하는 만큼 여러 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질문과 답변이 난무하는 이런 모습이 너무 캐주얼하고 프로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상상하는 ‘프로’의 모습은 ‘진행시켜.’라는 한마디로 멋지게 모든걸 끝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다양한 파트와의 대화를 통해 작업 관련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질문과 답변은 많을 수록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미리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은 미리 준비하면서 정보를 습득하기도 하고, 뭔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쉽게 티키타카하는 순간들은 제가 다른 분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첫 회사생활을 시작한 편집디자인 분야에서부터 지금의 UI/UX디자이너로 일하기까지 제가 대화하는 모습은 일하고 있는 필드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의사전달에 가장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새로운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점이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말은 ‘지시하다·표현하다·성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예술과 달리 디자인에는 구체적인 실체, 목적이 있는 것인 만큼, 디자이너의 일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시각적으로 형체를 입혀서 표현하고, 이를 잘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현재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분야의 지식과 용어를 익히지 않고 대화하는것과 아닌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팀은 제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인 언론, 뉴스 미디어를 깊게 다루는 곳입니다. 또 다시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합니다. 다양한 파트들을 잇는 교량같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오버 커뮤니케이션을 당연한 과제로 생각하고, 항상 귀를 열고 대화할 준비를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