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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Oct 09. 2021

스윗한 마리나

Marina

        장기 수강생은 장기 수강생을 알아보는 법. 아뜰리에에 도착해 소지품을 보관하고 손을 씻고 휴지로 젖은 손을 닦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게 휴지통을 찾는 일이다. 휴지통이 싱크대에서 멀리 떨어진 전자레인지 근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주 오는 학생이라면 자연스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동선이 정확하다. 손을 씻고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고 셰프의 시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고, 앞치마를 입고 그날의 레시피를 읽는다. 마리나가 눈에 띈 건 그녀의 화려한 외모 보다도 직원같이 자연스러운 이 동선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남부 도시 툴루즈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대략 큰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힌트를 주자면 툴루즈는 대학도시이자 에어버스 본사가 있는 곳. 대략 카이스트가 있는 우리나라의 대전과 같은 위치랄까? 따라서 툴루즈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유학생이거나 엔지니어, 혹은 그의 가족일 확률이 높다. 브라질 출신의 변호사 마리나는 박사 후 과정을 하러 온 남편을 따라 9살 난 딸아이와 함께 툴루즈에 정착했다. 이렇게 1, 2년 프랑스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욱이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된다면 프랑스에 잠시 여행하듯 사는 건 꽤 설레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꿈꾸었던 일들을 실행할 기회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쉼 없이 달리는 삶에 있어 잠시 쉬어가는 쉼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프랑스 주재원 가족들이 프랑스 발령이 정해지고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묻는 단골 질문이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프랑스에서 잘 살았다고 소문이 날까요?' 


        마리나의 오랜 꿈은 파티시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바람대로 긴 공부 끝에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녀의 눈과 심장은 예쁜 케이크들을 볼 때마다 반짝였을 테다. 그 반짝임과 열정이 아뜰리에 40회 장기 수강생이자 일등 단골로 만든 건 당연지사. 그녀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는 매일매일 구운 예쁜 케이크들의 사진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이제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브라질에 돌아가 파티스리를 오픈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그녀의 집에 초대된 날, 작은 화분을 가지고 찾아갔다. 그리고 만난 그녀의 딸아이. 자폐가 있어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마리나가 만든 케이크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먹는 모습을 보니 왜 그녀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케이크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녀에겐 이 달콤한 케이크가 딸아이와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수도 혹은 탈출구였을지도.


        

        그리고 그날 그녀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었다. '혹시 파티스리 샵에서 스타쥬(인턴)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을 생각 있어? Pôle emploi (고용노동부)에 등록하면 계약서를 만들어준대!' 


        몇 달 후, 남편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브라질에 돌아가게 된 마리나의 가방 안에는 그것의 심각한 코로나 상황을 대변하듯 마스크와 내가 그토록 팔라고 설득했지만 끝끝내 팔지 않은 제과 도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꾸꾸, 브라질에서 좋은 버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야!' 그녀의 SNS에는 여전히 새로운 케이크 사진들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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