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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Oct 17. 2021

사장은 처음이라

          2021년 5월 말. 프랑스 코로나 19 백신 수급이 원활해지며 레스토랑의 테라스 영업이 재게 되었다. 거의 1년 만이었다. 실내 식사는 불가하지만 테라스 야외 식사가 가능해지면서 툴루즈 시내 풍경까지 달라져 보일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테이크아웃 전문 케이크 매장인 에밀리의 매출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틀이 지난 케이크는 폐기하는 게 원칙이라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케이크를 보니 속이 다 쓰라렸다. 조금만 만들면 안 되나? 싶다가도 언제 또 손님이 다시 몰릴지 모르니 생산량을 바로 줄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맛도 포장도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에밀리는 5유로짜리 케이크를 위해 개당 50썽팀이나 되는 케이크 상자를 새로 주문했고, 케이크 상자라도 건지기 위해 케이크는 폐기하고 다시 쓸 수 있게 포장 상자 안을 깨끗이 닦는 일도 막내인 내게 주어졌다.


 

         한 달 선배 쥐스틴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식품영양학과 학부생인 쥐스틴느는 졸업 필수 과정으로 인턴 중인 대학생이다. 나 같은 한 달짜리 인턴은 고용노동부에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보험만 가입해줄 뿐이지 무급 인턴이다. 프랑스 법상 2달 이내는 무급이지만, 2달 이상 계약한 인턴은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 인턴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훨씬 적게 책정되는데 쥐스틴느는 시급 3유로를 받기로 했단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10유로 이상이니 그래 봤자 교통비와 식비 정도 되는 수준인데, 일 한지 한 달 반이 지나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니 쥐스틴느의 표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필 이날 에밀리가 새로 샀는지 선물을 받았는지 명품 가방을 들고 출근했다. 프랑스는 자고로 평등과 혁명의 나라 아닌가? 평소 수줍음 많은 쥐스틴느가 용기 내어 물으니 에밀리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을 했단다. 월급이라고 해봤자 400유로도 안되는데, 자기 월급보다 더 비싼 가방을 들고 온 사장을 보니 속상했나 보다. 여러 군데 전화통화를 하며 상황을 알아보는 듯하더니 다음날부터 출근을 안 하게 되었단다. 레스토랑 제 오픈으로 일자리도 많아져 재빨리 다른 인턴 자리를 구한 쥐스틴느는 그렇게 떠났다.

   

          어째 남은 정직원들도 불안한 눈치다. 월급은 제때 받을 수 있을런지, 여름휴가는 갈 수 있는지, 안 그래도 허리를 다쳐 설거지 담당 직원도 병가 중이고 인턴 한 명도 떠나니 퇴근 시간만 매일 조금씩 더 늦어진다. 내 계약 종료일 하루 전날 에밀리는 혹시 나의 무급 인턴 일수를 연장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상황이 어려운 지 아는 터라 고용노동부 담당 상담가에게 물어보니 무급 인턴 계약 연장은 불가하고 직원으로 정식 채용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에밀리는 나도 붙잡지 못한 채 직원수는 거의 반이 줄어들었다.


          얼마 후, 에밀리로부터 여름 2달 동안 나를 채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새로운 레스토랑들과 계약을 하고 매출이 다시 늘었다면서. 기뻤다! 프랑스에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그리고 인정받은 기분까지 들어 기분이 좋았다. 다른 직원들로부터 축하 메시지도 받았다. 그런데 근무 시작 이틀 전. 에밀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회계사가 현재 상황으로는 신규 채용은 어렵다고 했다고. 사장인 본인도 몰랐던 에밀리의 영업 위기를 회계사를 통해 아는 것도 신기했지만 일 시작 바로 전날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미안하다며 꼭 추천서를 써주겠다던 에밀리에게서는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그리고 들은 소식으론 2명의 직원이 더 나가고 단 3명의 직원만 남았다고 한다. 새로 오픈한 가게는 1년 안에 반은 사라진다는 자영업의 슬픈 통계가 에밀리에게는 맞아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불어도 못하고 나이도 많은 외국인을 인턴으로 뽑아준 고마운 첫 직장이니까 내 애정도 각별하다. 사장이라 해도 기껏해야 나와 동갑인 에밀리도 사장은 처음이라 우여곡절이 많겠거니 생각한다. 누구나 처음엔 어려우니까. 나 또한 첫 제과점 인턴이라 실수가 많았으니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새로운 케이크 맛보러 에밀리에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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