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매니아 Oct 21. 2021

CFA 제과학교 방문기

하늘의 별따기

          궁금했다. 툴루즈에서 제과 제빵 일을 한다면 열에 아홉은 누구나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툴루즈 지역 제과 학교들을 아무리 열심히 검색해도 나오는 단 한 곳의 그곳. 파티스리 에밀리에서 만난 Quentin과 Elias도 그곳에서 제과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곳의 이름은 Ecole Superieure des Metiers 줄여서 ESM Muret. ESM은 고등직업학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고, 뮤레 Muret는 툴루즈 시내에서 남쪽으로 기차나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 commune이다. 인터넷으로 이 학교의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학교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개방하여 상담을 해주는 날인 porte ouverte이 얼마 후에 있을 예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찾아가 보았다.

       

          도착해보니 학교 앞에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팬데믹으로 작년에는 이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니 관계자들 모두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을 하게 하는 등 방역에 열심인 듯했다. 이 학교에는 내가 관심 있어하는 제과 제빵 분야 말고도 가공육을 취급하는 boucher, charcutier 등을 아우르는 pole alimentaie 치위생사, 치기공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pole paramedical, 자동차 정비와 관련한 pole automobile 3 분야로 크게 나뉜다. 인상적이었던 게 학교 안 학생들 대부분이 작은 트렁크 mallette를 끌고 다녔는데 실습에 필요한 도구들이 한가득 들어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직업전문고등학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 학생들 대부분이 갓 중학교를 졸업한 10대 중후반이었고, 성인에게도 고등학교에 재입학해서 단기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 것이 매우 신기했다.

    

          실습공간을 둘러보니 여느 조리실보다도 크고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때마침 부활절 시즌이라 계란 모양 초콜릿을 만드는 수업과 제빵 수업도 볼 수 있었다. 재학생들의 실습수업을 보니 내 마음도 살짝 두근두근거렸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 학위를 가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 참가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제과 프로그램 설명 팸플릿을 보니 제과 프로그램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고 쓰여있다. 가장 기초 자격증인 CAP (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nelle)는 10대 학생들의 경우 불어, 수학, 과학, 역사 수업 등 일반 수업들도 들어야 해서 2년이 걸리는 반면,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들은 1년이 걸린다. CAP 자격증이 있어야만 제과점을 오픈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프랑스에서 제과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코스이기도 하다. CAP 취득 이후에는 또다시 1년이 걸리는 MC (Mention complementaire) 자격, 그리고 2년이 걸리는 BTM (brevet tehnique des metiers) 코스까지 있다. 그 안에서도 초콜릿, 설탕공예 전공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고 하니, 15살 때부터 이 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들은 CAP-MC-BTM 혹은 제빵 코스도 넘나들며 5년 이상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과 자격증은 직업전문학교 외에도 사설 학원에서도 몇 개월 만에 취득하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경우 정말 자격증에 관해선 꽤 진지한 거 같다. 자격증이 있으면 정말 관련 일을 할 있는 사람이라고 보증해주는 느낌이라 소위 말하는 장롱 면허, 장롱 자격증은 방지될 수 있을 것 같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차례. '입학 조건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혹시 B2이상의 불어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은지, 입학시험이 있진 않은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습할 업체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답변을 듣고 갸우뚱했다.

'제가 직접 찾아야 하나요?'  

'물론이죠!'


          다시 브로셔를 쳐다봤다.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는데? 두리번거리니 상담사가 학교 로고를 손가락으로 짚어준다. CFA (Le centre de formation d'apprentis) ESM Muret. Apprenti 교육 기관. 어프헝티는 그야말로 현장실습생을 말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도제'라는 말도 나온다. 이건 중세시대 수공업자들이 하던 그 도제교육 아닌가? 들어보니 2주는 업체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고, 1주일은 학교에 출석을 해서 이론 및 실습 공부를 한다고 한다. 학비는 무료가 아니라, 업체에서 직원 교육을 위해 매달 돈을 내는 OPCO (Operateur de competences)라는 정부기관에서 내준다고 한다. 비용은 한 시간당 10유로 정도. CAP 2년 기준으로 약 800시간 정도의 수업을 수료해야 하니 8,000유로 한화로 약 천만 원이라는 금액을 업체에서 부담해야 한다. 물론 학생들이 실습하며 노동하는 대가로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 이 비싼 비용을 지급하면서까지 업체들에서 왜 어프헝티를 고용하는 걸까?라는 원론적인 궁금증도 든다. 프랑스에서 중세시대부터 수공예일은 이런 식으로 배워오고 가르쳐왔으니까 아주 당연한 거란다. 이렇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직장인 제도를 Alternance라고 하고 수공예분야 일뿐만 아니라 IT, 엔지니어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에서 일반화된 제도라고 한다. 결국 프랑스에서 직업교육은 무료(?)라고 할 수도 있고 또 그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업체에서는 값싸게 노동력을 구할 수 있고, 학교 입장에서는 졸업만 해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현장을 매우 잘 아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고, 학생들은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값싼' 게 포인트. 프랑스에는 최저임금인 SMIC이란 게 있다. 2021년 10월 기준 시간당 세전 최저임금은 10.48유로. 1주일에 35시간 근무를 한다면 한 달 최저임금은 1,589.47유로. 환율을 1유로당 1,370이라고 치면 약 217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여기에 세금을 제하면 168만 원 정도가 손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물론 성인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고등학생 현장실습생들도 적용받는 최저임금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다르다. 15~17세 학생들은 첫 해에 smic의 27%인 429유로를, 18~20세 학생들은 smic의 43%인 683유로, 21~25세 학생들은 53%인 842유로를 받는다. 물론 첫해 기준이므로 매년 약 100유로 정도의 임금 상승은 있지만, 꼬박 한 달 일하고 427유로 한화로 약 60만 원만 받고 실습을 한다면 매우 억울할 것 같다. 26세 이상 학생들은 smic을 다 받고 29세 미만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 세전, 세후 금액이 같다. 업체는 실습생 한 명을 고용하면 1년에 약 8,000유로의 정부 지원금도 받는다고 하니 업체 입장에서는 거의 무료로 노동력을 얻는 셈이다.

      

          그럼 30대인 나는? 만 30세 이상은 최저임금 이상을 당연히 받아야 하고, 어프헝티 계약이 아닌 일반 CDD(계약직), CDI(정규직) 계약을 해서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을 내야 하니 업체 입장에서 큰 부담이다. 더욱이 1년만 실습하고 떠나고 일 시키기도 어려운 성인이 업체를 구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 더욱이 나는 불어도 잘 못하고 신분도 불안정한 '외국인' 더욱이 임신과 출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가임기 여성. 상담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든 여정이 될 거예요. 원래 외국에 정착하려면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도 용기를 가지세요! Bon Courage.'

     


          나는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작가의 이전글 사장은 처음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