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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Oct 17. 2021

새벽 출근과 레몬 10킬로

늦잠 자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새벽 출근길의 기록

          파티시에의 출근 시간은 이르다. 이르면 새벽 4시, 늦으면 6시. 프랑스 법정 근로 시간이 주 35시간. 하루 7시간 근무로 치면 이르면 오전 11시 혹은 오후 1시쯤에는 퇴근한다는 이야기다. 이 근무 시간은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아주 큰 단점이다. 장점이라면 오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아이를 키우는 경우 배우자와 육아 분담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점이라면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나마 장점이었던 퇴근 후 오후 시간을 잠자는데 다 써버린다는 것, 저녁에 최소 9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해서 사교생활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특히 주말 새벽 출근길에는 밤늦게 파티를 즐기는 온갖 진상들을 만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새벽 출근은 여전히 춥고 무섭고 또 일어나지 못할까 늘 두렵다.


          인턴 일주일째. 긴장이 풀린 탓일까. 아침 4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눈을 떠보니 평소보다 밖이 환하다. 뜨헉. 왜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까. 휴대폰을 켜보니 동료의 부재중 전화까지 와있다. 씻는 둥 마는 둥 옷만 갈아입고 달리고 달려 도착해보니 1시간 반이나 지각했다. '걱정 마! 무사히 출근했으니 다행이야!' 한 번쯤은 다들 겪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다독이며 지나간다. Emily의 구성원은 사장 에밀리, 이탈리아에서 온 메뉴 개발 담당 마리아, 190cm의 장신 Quintin, 나이는 어리지만 경력이 많은 Elias, 한 달 인턴 선배 쥐스틴느, 설거지 담당 Vivi 그리고 막내인 나와 판매 직원 2명이 있다.

     

           새벽 6시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케이크 완성 보조와 포장일이다. 매장 오픈 10시 전까지 쉬지 않고 바짝 일을 해야 그날 판매할 케이크들을 완성할 수 있다. 그간 했던 밑 작업들을 조합해 완성작인 예쁜 케이크들을 만드는 시간이라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순간이다. 그날 만들어진 케이크들 중 가장 예쁜 아이들로 골라 진열대에 진열하는 것도 막내에게 주어진 특권이랄까. 망가지지 않게 조심히 포장까지 마무리하면 어느새 오픈 시간이 다가온다.  

             오전 10시 달콤한 30여분 간의 휴식시간이 끝나면 다른 날들에 쓸 재료 밑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는 레몬, 하루는 딸기, 하루는 체리. 살면서 그 많은 양의 과일들을 다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손에는 굳은살과 온갖 상처가 생기고 온종일 서서 일해 다리는 천근 만근이지만 달콤한 과일 향을 맡으며 하는 일이라 그런지 고생보다는 왠 호사인 가도 싶다. 고작 몇 개월 전만 해도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의 채취를 맡으면서 일했었지 하며 딴생각이라도 들라치면 '빨리빨리~'라고 외치는 선배들의 재촉 소리가 들린다.


          맛있는 케이크의 조건은 무엇일까? 좋은 재료와 노하우가 축적된 레시피도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무료 인력이 느린 손길이나마 일손을 보태 것도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잉여(?) 인력이 있기에 통조림 같은 인공재료 대신에 신선한 재료들을 직접 손질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실수로 못쓰고 버린 재료들을 셈하면 가게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겠지만 말이다.


          짧은 경험이나마 해보니 파티시에 일은 새벽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추운 냉동고와 더운 오븐 앞을 오가느라 감기 걸리기 십상이고 빠른 비트의 노동요를 듣지 않으면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에 치지고 힘들어 나 죽겠네하고 곡소리가 나는 일이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고 남들 쉬는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더 바쁘다. 특수교사보다 단연 좋은 직업이라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교사보다 더 좋은 장점을 뽑자면 회의감이 덜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 노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면 예쁘고 맛 좋은 케이크라는 결과물이 내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진짜 옳은 일일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실행해보고 안되면 레시피를 수정해서 더 나은 레시피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교사는 특히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는 100을 준비해서 가르쳐도 학생이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을 수도 있다. 교사로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여러 번 가치 고민을 해봐도 정답은 없다. 책임만 많을 뿐이다. 책임지기 싫어 시도도 못해보는 경우가 많다. 케이크를 사 가는 고객들의 미소가 좋아서 이 일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게 조금 죄책감이 든다. 학생들과 나의 마음이 닿았을 때 학생들이 보여준 진심 어린 맑은 미소가 고객들의 미소에 감히 비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인 만큼 가게도 장사가 잘되어 복덩이 소리를 들으면 좋았으련만 매일 아침 매출 장부를 확인하는 에밀리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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