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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03. 2021

두 번째 스타쥬

변호사와 운동선수는 어쩌다 빵집 사장이 되었나

          두 번째 스타쥬(인턴쉽)를 구했다. 우리 동네 크로와상 맛집으로 이름난 Cyprien 제과점이다. 가게에 찾아가 바로 이력서를 건네기가 조금 쑥스러운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손님인 척 줄을 서서 가게 분위기도 보고 직원들 얼굴도 익히고 다른 제과점과 다른 케이크들도 구경하면서 기다리다 제일 잘 나가는 빵을 하나 주문해 계산하면서 쭈뼛쭈뼛 이력서를 건네는 게 내 나름의 이력서를 돌리는 법이다.


           내 비록 빵집을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맛 좋은 케이크를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싶고, 또 직원 입장에서도 손님이 주는 이력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는 호의라도 보여주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빵값까지 쓰며 이력서를 돌리는 데에는 나름 이런 이유가 있다.

 이날도 앞 손님들이 연달아 산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키 크고 인상 좋아 보이는 직원에게 이력서를 짜잔 하고 건넸다. 내 얼굴을 찬찬히 보는 직원이 따라오라며 내게 손짓을 한다. 계산대 너머 문을 지나니 작은 작업실 안에서 키 큰 다른 직원들이 이력서들을 펼쳐 놓고 이야기 중이다. 이곳은 키를 보고 사람을 뽑나 할 정도로 다들 190센티가 훨씬 넘어 보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창 채용을 논의 중이었나 보다. 

         사장인 듯 보이는 가장 키 큰 사람이 다가온다.

         '안 그래도 새로운 견습생을 뽑으려던 참이었어. 너 이 동네 사니?'키 크고 이 근방에 사는 게 중요한 것임을 깨달은 나는 구부정한 어깨를 쭈욱 펴고 조금은 과장해서

          '저 5분 거리에 살아요!'라고 손가락 다섯 개까지 펼쳐 보이며 힘주어 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말이야...'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스타쥬를 해보고 정하는 게 어때요?' 업체에서 무료 인력을 굳이 거절할 까닭은 없다.

   

          고용노동부 상담사의 도움으로 나의 두 번째 스타쥬 계약서를 작성하고 바로 그 다음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에밀리에서는 정말 파티시에 일이 해볼 만한지 알아보기 위한 거였다면, 이번에는 견습생 취업이 걸린 만큼 조금은 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도움이 될까 하고 인터넷에 매장 이름을 검색하고서 키 큰 사장님들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내 이력서를 받아준 키 큰 판매 직원은 알고 보니 변호사 출신의 사장님 1이었다. 변호사로 일을 하다 인도 여행 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변호사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툴루즈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가 운동을 그만두고 제과를 공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여기서 이 운동을 하던 친구가 내가 사장이라 생각했던 가장 키 큰 사장님 2이었던 것. 프로 사이클 선수로 평생 운동만 할 줄 알았던 그는 여행 중에 풍토병에 걸려 폐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26살에 제과 학교에 입학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파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중 어렸을 적 친구가 한 제안으로 이 둘은 동업자가 되었다. 친구끼리 사업을 하다 혹여 망하면 어쩌나?라는 우려와는 달리 사업 초기에 프랑스 빵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나와 홍보 효과를 제대로 탄 덕에 4년 만에 지금은 툴루즈에만 3개 매장을 가진 제법 큰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 이 둘의 스토리텔링이 방송에 나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유도 있겠지만, 크로와상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조차 냉동생지를 많이 쓰는 판에 수제 크로와상이 맛도 좋다면 이게 사업 성공의 일등공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가지 일에만 20년 30년 계속 한 우물을 판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게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정도만 걷지 않은 아웃사이더라 그런지 사장 1, 2 처럼 이유를 불문하고 중간에 진로를 바꾸는 용기를 낸 사람에게 더 끌린다. 더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해야 할까? 한 달간의 스타쥬 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생길까? 크로와상 비결을 쏙쏙들이 알아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견습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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