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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07. 2021

플랑 Flan

크..크로와상은 언제쯤...

            드디어 시작된 한 달간의 Cyprien에서의 스타쥬. 출근 첫날 이력서를 제출했던 매장과 다른 곳에 위치한 작업실이 어디인지 몰라 헤매다 빵 굽는 냄새를 따라 골목 이리저리를 뛰어다닌 덕분에 많이 늦진 않았다.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은 다소 허름해 보였던 외관과는 달리 내가 본 어느 작업실보다 깨끗하고 근사했다. 사장님 Lionel의 키에 맞춰 작업대 높이가 높은 것도 장점이었다. 한 달 동안 함께 일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ESM Muret 학생인 Valentine, 한국에서 2년 동안 살다 왔다는 Diane, 마카오에서 10년 간 파티시에로 일한 Luke가 있었다. 마스크 너머 친절한 인상이 반가웠다.       

                직원들이 모두 새벽 5시에 출근할 때, 인턴인 나는 야간 근무를 할 수 없어 한 시간 가량 늦게 출근하게 되었는데, 그때 출근하면 그날 판매할 케이크의 마무리 장식이 끝나버린 점이 아쉬웠다. 케이크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맨 마지막 장식이니까. 매일매일 5분, 10분씩 출근 시간이 조금씩 빨라진 건 안 비밀이다. 출근하고 며칠은 직원들이 하는 일을 열심히 관찰하고, 보조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셰프이자 사장인 Lionel이 특명을 내렸다. 바로 플랑 Flan 12킬로어치를 만드는 일! 플랑은 프렌치 파티스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국 떡집으로 말하자면 절편 같은 품목이다. 커스터드 크림을 굳힌 듯 한 쫀득한 식감에 많이 달지도 않은 밍밍한 맛일 수도 있지만, 단연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 중 하나이다. 맛도 좋고 기본 중의 기본인 이 플랑이 참 무겁다는 것이다.

             

                                 1.5kg 플랑 1개 기준 (겉 반죽 제외)

                                     재료

 우유 (1) 800g

 바닐라 농축액 16g

 계란 98g

 설탕 184g

 크렘 파티시에 가루 100g

 우유 (2) 160g

 크림 35% 160g

 소금 조금

 오렌지 꽃물 12g

 이렇게 플랑 1개가 1.5킬로가 나간다. 그리고 매일 6개 12킬로를 만들었다. 우유를 데울 때 수분이 날아가는 걸 막기 위해 냄비에 랩을 씌워서 데우는데, 랩이 언제라도 부풀어 오르진 않을까 초조해하며 기다리며 다른 일을 하다 랩이 커다란 풍선만큼 부풀어 오르면 계란과 가루를 섞은 반죽을 섞고, 또 우유와 크림, 바닐라와 오렌지 꽃물을 섞은 액체를 넣고 다시 섞으면 끝. 파이 틀에 성형해 차갑게 휴지 시켜 둔 파이 반죽에 뜨끈한 플랑 반죽을 균등하게 분할하고 한 시간 가량 식힌 후 겉이 새카매질 정도로 바삭하게 굽는 게 완성이다. 글로 풀어쓰니 쉽게 느껴지지만 초보자에겐 계량하는 데에만 해도 시간이 꽤나 걸려 쩔쩔매게 된다. 그것도 잘 와닿지 않는 불어 레시피를 봐가면서 하면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마련. 이게 또 보통 일이 아닌 게 되직한 반죽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거품기로 잘 저어줘야 하는데, 하고 나면 팔도 아프고 손에 굳은살도 배긴다. 기본이 가장 어렵다는 게 베이킹에서도 통하는 진리인 걸까.

누룽지만큼이나 고소한 플랑 같은 케이크가 또 있을까?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단연 내가 제일 좋아하는 Cyprien의 플랑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플랑을 만들다 보니 개운하게 잘 만들어지는 날은 그날 기분도 좋다. 냄비에 누른 얼룩이라도 남기게 되는 날은 그날따라 뭐를 해도 잘 안 풀리는 느낌. 플랑을 만들고 나면 재고량에 따라 파운드 케이크, 쿠키, 비스킷, 초콜릿 케이크 등을 만들었다. 계속 서서 일하느라 몸은 고되지만 일하는 만큼 바로바로 결과물이 나오는 정직한 노동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도 장점이다. 유독 깨끗한 새 작업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릴 하나하나까지 오븐에 소독하며 청소하면 그날 하루 업무는 끝! 일한 지 일주일이 금세 지나갔다. 그나저나 맛좋기로 소문난 크로와상은 언제 만드는 거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로와상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청소시간마다 나를 감시하던 이웃집 고양이. 너는 알까, 크로와상의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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