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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Dec 05. 2021

프랑스 10대들과 학교 다니기

우리 반의 할머니는 나야 나

          'Ne t'inquitét pas, On va refaire le contrat, il n'y a pas de problème.'

셰프 아따나스에게서 문자가 왔다. '걱정하지 마, 다시 계약하는데 아무 문제없어!' 주말 내내 마음을 졸였었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받으니 마음이 놓였다. 월요일 출근하니 행정을 담당하는 사장 캐롤도 사정을 전해 들었는지 이미 계약서도 새로 준비해서 바로 서명할 수 있었다. 회사 측에서도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견습생을 구해서 좋고, 나도 1년 만에 CAP를 따는 성인들보다 두 배 더 시간을 들여 기본을 다지는 거니 졸업하자마자 파티시에로 일하기에 손색이 없을 거라고 말해주니 마음이 편해졌다. 일 시작하자마자 시민교육 때문에 휴무일을 바꾸고 거기에 계약서 변경까지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었다. 회사 사정보다 노동자인 나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당연한 건데도 왠지 내가 외국인 직원이라서 일이 복잡하게 진행되는 거 같아 괜스레 마음 졸여질 때가 있다. 걱정 많은 건 한국인의 고질병이다. 리고 또 른 고질병이 도졌다.


          파티시에가 되어 진짜 내 일을 하기까지 1년을 더 투자하게 되면 학교를 졸업하는 건 2023년이니까, 30대 중반이 될 테고 MC, BTM 고급과정까지 공부하려면 30대 후반이 되겠구나, 손가락으로 하나 둘, 내 나이를 세고 나니 조금 까마득하다. 나이를 따지는 것도 한국인의 고질병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바로 오늘, 일주일, 한 달  바로 눈앞에 산재한 고비들을 넘기며 잘 버텨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2년 과정으로 바뀌면서 제과학교 반도 바뀌게 되었다. 십 대 아이들과 함께 다녀야 한다는 데 괜찮을까?

학교를 통해 구입한 조리복과 조리도구. 십대 학생들은 무료이지만 30세 이상 성인은 본인이 구입해야한다.

         바뀐 학급 스케줄에 따라 1주일 만에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다. 일반교과 수업 시간이 늘었으니 시간표도 바뀌어 월요일엔 불어, 도덕, 역사, 미술 수업 등이 배정되었다. 어느새 학교도 익숙해져 바로 불어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가니  눈엔 아기 같은 어린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그리고 뒤따라온 한 남학생이 '선생님...?'이라고 묻는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한테 선생님이냐 묻는 줄 알고서 '노노노, 전에 선생님이었지만 저는 선생님이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남학생이 푸훗하고 웃는다. 알고 보니 이 남학생이 불어 선생님이었다. 내 눈엔 그저 학생으로만 보였는데, 이제 대학원을 막 졸업한 26살 미혼 선생님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담임교사 제도가 없지만 담임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회사에서 어려운 일은 없는지 물으며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기특했다. 선생님한테 기특하다고 하는 게 우습지만 나보다 어린 선생님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지금 대학생인 학생들을 줄곧 가르쳤던 나로서는 15~17살 학생들과 한 반에서 수업을 받는 게 감회가 새롭다. 재잘재잘 얼굴에 장난기 많은 학생들은 내 나이를 듣고서 단박에 '우리 반에 할머니(Mamie)가 생겼다!'라고 외쳤다.  얼떨결에 할머니가 됐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불어 교실. 벽을 가득 메운 동사변화표. 프랑스 학생이나 외국 유학생에게든 불어가 어려운건 매한가지인가보다.
교내에서 모자를 쓰는 건 엄격하게 금지하는데, 담배를 피우는 건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 프랑스 직업학교. 학생 눈높이에 맞춰 마스크 착용법을 그려 놓은게 프랑스식 유머답다.

       일주일 사이 성인반과 십 대 반 둘 다 겪어보고 발견한 차이점을 나열해보자면

1. Whats app은 구식. 지금은 인스타 세대

성인반에서는 왓츠앱 그룹채팅방으로 정보를 공유했는데, 십 대 아이들은 인스타그램으로 소통을 한다. 나도 월요일 아침에 오자마자 인스타와 틱톡 아이디를 알려달라는 아이들에게 차마 인스타가 뭔지 잘 모른다고 말하기 창피해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얼른 만들었다.

2. 외출은 보호자의 허락하에

가끔 선생님들 결강 때문에 점심시간이 2시간 정도 되는 경우가 있는데, 집에 가서 잠도 자고 오는 성인 학생들과는 달리 십 대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면 보호자가 미리 동의서를 보낸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것도 15세 학생은 외출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맥도날드에 다녀오는 학생들. 마치 인솔교사가 된 듯 학생들이 안전하게 잘 가는지 주변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3. 꼰대 같지만 밥은 잘 챙겨 먹기를

성인반 학생들은 점심으로 스테이크도 싸오고 건강하게 잘 챙겨 먹는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십 대 학생들은 하루 정해진 용돈 안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하다 보니 컵라면이나 부실한 샌드위치로 때우고 탄산음료나 에너지음료를 엄청 자주 사 먹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가끔 과일을 잔뜩 사서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잘 챙겨 먹길.

4. 아이고 시끄러워라

선생님에 따라 떠들어도 혼내는 게 별로 안무서운 선생님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떠든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꺼내 갑자기 티톡 동영상을 찍는 건 문화충격이었다. 가장 무서운 실습수업 선생님 수업에서는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는데, 다정한 선생님보다 무서운 선생님 말을 더 잘 듣는 건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5. 아이와 어른 경계에 있는 학생들

청소년이라는 말이 딱 그 뜻일 테다. 심지어 적은 돈이나마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본인도 제법 어른같이 느껴지고, 또 우리나라보다 제한 연령이 어리다 보니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자동차도 운전한다. 쉬는 시간 5분 전부터 담배를 말아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밖으로 뛰쳐나가 흡연을 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우리네 학생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똑부러지게 자기 몫을 다하는 모습이 무척 기특하다.

 

     선생님들도 내 사정을 아는지라 신경도 많이 써주고 지나가면서 Bon Courage! 힘내라고 응원의 인사말도 건넨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진지한 성인반도 좋았지만 문제반 같은 지금의 십 대 반도 퍽이나 마음에 든다. 십 대 반이라 그런지 선생님들도 천천히 자세히 알려주고 학생들도 나에게 할머니라 부르며 자기 필기 노트도 보여준다. 물론 체육 수업에서 십 대 아이들과 축구 농구를 할 때면 체력 때문에 도저히 못 따라가겠지만 영어 수업이나 실기 수업에서는 졸지에 내가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되어 있어 우쭐해지곤 한다. 우리 반 학생들을 보다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티시에 셰프들 모두 십 대 나이 때 이런 과정을 겪으며 제과 공부를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셰프 아따나스도 혼나면서 공부했을 테고, 에밀리 실수하며 배웠을 거라 생각하니 나도 시간이 지나면 더 잘 되라는 믿음도 생긴다. 이 여물지 않은 어린 학생들도 공부를 마칠 때쯤에는 단단해지고 크게 성장해있겠지? 어쩌다 보니 서른을 훌쩍 넘어 16살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게 된 행운을 가졌다. 덕분에 덩달아 나도 철없어지는 나날이다.

영어수업시간에 만든 꿈 포트폴리오. 많은 학생들이 해외에서 파티시에로 활동하고픈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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