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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Dec 09. 2021

삼십 대 어프헝티는 얼마나 받을까?

월급 공개

      꿈만 꾸며 살 순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밥은 먹어야 하고, 작지만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공간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작은 선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돈벌이는 성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업'일 것이다. 

      만 19살. 아일랜드 캠프힐에서 성인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조하는 코워커로 지낼 때 1주일에 40유로를 받았다. 숙식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포켓 머니로 불린 이 작은 돈으로 가끔 펍에 가서 동료들과 기네스를 사 마시거나, 한국에 엽서를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더블린에 놀러 가 여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 21살, 미국 교환학생 시절 대학 연극무대에서 무대 조감독을 하고 소품 소도구 제작일을 하며 여름 방학 2달간 일주일에 160달러를 받았다. 기숙사비를 내고 나면 식비를 감당하기에 빠듯해서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통조림 파스타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탄자니아에서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일할 때는 형편이 그나마 나았다. 집세도 나오는 데다 한 달에 700달러 가까이 받았으니, 심지어 현지인 교장선생님보다 월급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시골에 사는 덕분에 생활비 대부분을 아껴 방학 동안 사파리 여행도 원 없이 했다. 

      그리고 지금은 프랑스. 20대 때처럼 식비를 아끼다가는 건강을 잃는 게 더 두려운 나이가 됐다. 불어도 더 잘하고 싶고, 파티시에 공부도 끝까지 하고 싶고, 한국 가족들에게 가끔 선물도 보내고 싶고, 으슬으슬 비 오는 날에는 집안에 난방도 따뜻하게 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돈을 벌며 공부할 수 있는 알떼흐낭스(Alternance) 즉, 견습생 프로그램이 절실했다. 알떼흐낭스 프로그램으로 일을 하며 공부를 하는 견습생을 어프헝티(Apprenti)라고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회사를 구해서 2주는 회사에서 일하고, 1주일은 제과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제과 어프헝티가 되었다. 30대 어프헝티가 흔치 않은 건 회사 입장에서 10대~20대 어프헝티들보다 더 비싼 값이 들기 때문이다.     

매월 5일이면 월급과 함께 월급 명세서를 받는다. 끊기 어려운 월급 마약이여.

      최저임금 SMIC 일주일 35시간 근무 기준 한 달에 1589,50유로에 오전 6시 이전에 근무해서 받는 야간 수당까지 세전 1623,56 유로를 받는데, 여기서 의료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과 기타 세금까지 약 30% 정도 396,59유로를 제하고 1226,97유로가 통장으로 들어왔다. 한화로 약 160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할 때보다 훨씬 적게 받는 거지만,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프랑스에 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불어로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걸 감안하면 지금 내 상황에서는 과분할 정도 감사한 월급이다. 이달은 2주나 학교에 갔으니 실제로 일한 건 2주밖에 안 되는 걸 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제과학교 학비로 2년간 7365,75유로도 지원해준다.

회사에서 2년 동안 내 학비를 내 준다는 계약서. 회사는 어프헝티가 학교에 가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고 어프헝티도 공부도 일의 연장이므로 되도록 결석하지 않아야 한다.

      적은 돈이지만 해외에서 일을 하며 세금을 내고 산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닌다. 어쨌든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아프거나, 일자리를 잃건 사회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물리적인 혜택도 있지만, 한 개인으로 배우자나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자립해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정신적으로 건강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어프헝티들이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6세 이상일 때만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고, 그 이하는 나이나 일한 년수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데, 제과학교 15~18세 우리 반 학생들은 보통 400유로 초반의 월급을 받는다. 적은 월급이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십대, 이십대 초반 어린 어프헝티들을 회사들이 더 선호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훨씬 더 적은 비용과 훨씬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도 어프헝티를 고용하면 좋은 점이 세금 감면의 혜택도 있고, 29세 이하 어프헝티 1인당 8천 유로 지원금도 받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얻는 셈이다. 1명의 정직원을 고용하는 비용으로 3명 이상의 어프헝티를 고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 왜 회사에서는 많고 많은 값싼 지원자들을 놔두고 상대적으로 비싼 나를 어프헝티로 고용했을까?    

우리 반에서 나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21살 아나이스의 가계부. 한 달 월급 800유로로 빠듯하게 생활한다. 천 유로 세대는 나름 괜찮은 세대였던가.

      내가 특별히 일을 잘한다거나 하는 이유였으면 마음속으로 무척 뿌듯했을 테지만, 지난 3개월간 일을 해본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셰프를 포함한 직원 대부분이 어린아이를 가진 육아 대디인 이유가 큰 거 같다. 일을 마치고 바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와야 하는 그들로선 새벽 5시에 같이 일을 시작해 낮 12시에 함께 일을 마칠 수 있는 성인 어프헝티와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미성년자인 경우 새벽 6시 이전에 일을 할 수 없고, 어프헝티도 계약에 따라 주당 최소 35시간을 일해야하기 때문에 셰프 입장에서는 미성년 어프헝티가 일을 마칠 때까지 오후까지 함께 남아서 일을 감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단순히 월급으로 나의 노동 가치를 평하려는 것은 아니다. 세후 250만 원을 받던 한국의 교사가 이국에서 더 적은 급여를 받으며 육체노동을 하는 제과 견습생이 되었다고 가치가 낮아지는 것도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더 재미나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기본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하다.


      프랑스에서 나는 1200유로를 받는 어프헝티 파티시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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