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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May 11. 2022

Un jour de la bêtise

실수투성 토요일

        빵집에서 파티시에로 일한다고 하면 많이 묻는 말이 "맛있고 예쁜 케이크들 정말 많이 먹을 수 있겠네요!"이다. 답을 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을 수는 있으나 예쁜 케이크를 먹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단가가 저렴한 크로와상의 경우 오전 8시 쉬는 시간에 갖구워서 따끈따끈한 채로 먹을 수 있지만, 한 조각에 3유로가 훨씬 넘어가는 케이크는 만드는 파티시에라도 맛보기가 쉽지는 않다. 단 예외는 있다. 규격에 너무 작은 밀푀유 마지막 한 조각이라든지, 틀에서 꺼내다 깨져버린 피낭시에 한 조각이라든지, 냉동고에서 꺼내다 바닥에 떨어뜨린 로얄 케이크 등등 어쩔 수 없이 상품의 가치가 없어진 케이크들은 냉장고 한쪽에 보관해뒀다 퇴근 때 직원들끼리 나눠 집으로 가져간다. 버리긴 아깝지만 어쨌든 맛은 좋은 못난이 케이크들은 자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히한하게도 이런 하자 있는 케이크들을 집에 가져가는 날은 유독 토요일이다. 그만큼 토요일마다 실수도 많다는 소리.    

        

        우리 빵집 파티시에들은 주중에 하루 쉬고 일요일에 다 같이 쉰다. 나 같은 경우 가장 막내라 주중에 쉬는 날이 화요일이었다 목요일이었다 금요일이었다 확실히 정해지지 않고 그 주 다른 직원들의 스케줄에 많이 유동적이지만 셰프 아따나스는 항상 목요일, 니콜라스는 수요일 이렇게 정해져 있다. 나도 처음에는 이틀 연속 쉬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몰랐는데, 제과학교에 가는 주간에는 토요일 일요일에 쉴 수 있으니 가까운 근교로 여행도 계획할 수 있고 밀린 집안일도 할 수 있어 이 주말만 기다리게 된다. 주중에 하루 쉴 때는 보통 어학원 불어 수업에 가거나 혹은 병원이나 관공서 일을 보느라 쉬는 것 같지 않게 지나가고, 토요일에는 오전 11시에 퇴근하니까 나름 1.5일 주말이 있는 거라 여겼던 주말은 일요일 밤이면 늦어도 밤 9시에는 자야 한다는 압박감에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밀린 잠만 자다 금방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직원들은 늘 만성피로를 호소하는데, 더욱이 토요일에는 일요일을 앞두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실수도 많은 것 같다. 이런 실수들을 우리는 bêtise 즉, 바보 같은 짓이라고 부른다. 토요일은 그래서 바보의 날이다.

유독 피곤해 보이는 토요일 쉬는 시간의 휴고와 아따나스.

 실수 1 : 휴고의 치즈케이크 계량 실수

    불금을 즐기는 술 취한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출근한 토요일 새벽 4시. 직원들 모두 피곤에 쩔은 모습이다. 이럴 때 가장 어려운 게 예상치 못하게 전날 오후에 들어온 주문이다. 10인분 치즈케이크. 매일 8인분짜리 3개의 치즈케이크를 생산해내는 우리들 머릿속에는 생크림 1600그램, 레몬주스 500그램이 딱 박혀있다. 그런데 갑자기 10인분이라니? 갑작스러운 주문에도 유동적으로 잘 대처하는 것도 파티시에의 자질 중의 하나지만 금요일 밤, 아니 1시간 전만 해도 집에서 파티를 즐기다 온 휴고의 머리는 도무지 돌아가지가 않는다. 더욱이 수학 때문에 CAP 시험을 떨어질 뻔했던 그로써는 계산기가 아닌 감으로 모든 재료의 양을 비율에 상관없이 조금씩만 더해서 만들었다. 결과는 대실패. 아까운 재료들을 다 버려야 했다. 윽박지르는 니콜라스의 호통 소리를 뒤로하고 1시간 만에야 겨우 치즈케이크 4개를 완성한 불쌍한 휴고. 그마저도 조금 남아 집에 가지고 올 수 있었는데, 연습 삼아 작은 무스 틀로 미니 치즈케이크를 만들어 이웃들과 나눠먹었다. 



미니 치즈케이크로 완성! 


실수 2 : 로렌의 파이 반죽

    CAP 상위 과정인 MC 과정을 밟고 있는 로렌은 요즘 laminoir로 반죽 성형을 담당하는 tourage 수련을 받고 있다. 우리 업장에서 쓰는 반죽에는 pâte sucréepâte feuilleté, pâte sablé 등등이 있는데, 개수는 많지는 않지만 냉장고에서 하루 이틀 숙성하고 나면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렵게 색깔이나 점성이 비슷해진다. 그러면 맛을 보고 구분하는 게 좋지만 초보자에겐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날 일한 멤버 넷이서 똑같이 나눠가진 로렌 표 파이. 맛이 아주 좋았다!

    배 파이, 크럼블, 키쉬, 플랑을 만들기 위해선 tourage 포스트에서 파이 반죽을 파이 틀에 fonçage 해주어야 파티시에들이 그 후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로렌이 건네준 배 파이와 피스타치오 파이 틀을 보았을 때는 fonçage가 서툴러 반죽이 굉장히 얇게 되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니콜라스에게 물었을 때 괜찮다고 확인받은 후 아몬드크림을 넣고 파이를 만들었다. 오븐에서 맛있게 구워져서 나왔을 때도 별일 없다 생각했는데, 문제는 파이 틀에서 꺼낼 때 발생했다. 파이 틀에서 파이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알고 보니 가또 바스크에 쓰이는 진득한 pâte breton을 pâte sucrée대신 쓴 것. 보통 파이 반죽보다 바삭바삭해서 파이가 그냥 바스러지니 그대로 판매할 수는 없어 다시 처음부터 파이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기죽은 로렌 곁에서 우리는 내일 장에 가서 이 파이를 팔자며 농담을 건넸다. 사실 꼭 기죽을 것만은 아닌 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맛있는 케이크들이 끝없이 이어진 연구 끝에 탄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이런 실수 속에 탄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실수도 포용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한 거 같다. 보고 있나 니콜라스?  


실수 3 : 니콜라스의 꽁꽁 얼어버린 크렘 파티시에

    이건 나중을 위해서라도 사진을 찍어둘 수밖에 없었다. 크렘 파티시에는 살균을 위해 만든 직후 영하 20도 온도에서 빠르게 식혔다가 영상에서 냉장 보관해야 한다. 보통 급속 냉동고에서 40분가량 두는데, 꺼내는 걸 잊을까 봐 타이머를 설정해둬야 한다. 이걸 까먹은 니콜라스는 크렘 파티시에를 꽁꽁 얼려버렸고, 용기에서 꺼내지 지도 않아 녹을 때까지 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셰프 몰래. 어프헝티들 입단속까지 시키면서.  














        실수 4 : 가장 치명적인 나의 실수

크렘 다망드, 아몬드 크림은 우리 업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크림이라 한 번 만드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들어가는 버터 양만 해도 한 번에 4킬로. 이 버터를 크림 상태로 잘 녹여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돌아가는 로보 파티시에 밑을 chalumeau라는 토치로 달궈줘야 한다. 토치로 다 사용한 후 로렌에게 잠깐 뭘 물어보다 그만 토치의 불 나오는 부분, 뜨겁게 달궈진 쇠 부분을 손으로 움켜잡고 말았다. 깜짝 놀라 떼보니 손바닥이 빨갛다. 차가운 물로 응급처치는 했지만 일하다 따뜻한 것만 잠깐 손에 닿아도 너무 아렸다. 그나마 피부가 단단한 손바닥이라 다행이었지 맨살이었으면 더 크게 델 뻔했다. 실수라도 몸이 다치는 실수는 치명적이다. 이럴 때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자고...' 하는 레퍼토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차라리 케이크라도 실컷 먹을 수 있는 휴고나 로렌의 실수가 낫다고 여겨질 만큼 사고는 절대주의해야 한다. 토요일에는 다 꺼진 토치도 조심 또 조심!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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