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뒤늦게 기록하는 제과학교 1학년 마지막 한 주
작년 9월 CFA(Les centres de formation d'apprentis) CAP Pâtissier 과정에 입학하고 난 후로 그새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주는 1학년의 마지막 한 주였다. 프랑스에 온 지 1년 하고도 6개월.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업은 많이 빠졌지만 어쨌든 대학 부설 어학원의 B2 코스도 무사히 통과했고, 이름 그대로 많은 커플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시험관이라는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특수교사로 살아온 7년이 무색하게 직업을 바꿔 1년을 꽉 채워 파티시에로도 살아보았다. 병원도 학교도 직장도 40도가 웃도는 남프랑스의 무서운 더위에 모두 멈춘 듯 하지만 매일매일 빵 없이는 못 사는 프랑스인들 덕분에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오븐을 켠다.
1학년 과정이 모두 끝났다는 건 CAP 시험까지 10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선생님들이 입을 맞추어 말한 것이 일도 좋지만 여름 방학 동안 부족한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실기에 비해 일반 교과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5분 만에 주어진 자료를 분석해서 10분 동안 발표 및 질의응답 시간을 거치는 프랑스 시험 방식은 불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는 꽤나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있는 CAP 시험 대비 참고서를 하나 구매했다. 아직 첫 5장도 채 보지 않았지만 책상에 이 책이 놓여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안정이 된달까?
2학년 스케줄도 나왔다. 8월 30일 날 개학 예정이다!
제과학교에 가는 주간은 새벽 출근의 부담이 없어서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하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영화를 다 보고 시내를 가로질러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다. 평일 저녁에도 시내에 사람들이 꽤 많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드는 파티시에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일반인들을 보니 살짝 부럽기도 했다.
기차를 타기 전 자주 찾는 카페에서 카푸치노도 테이크 아웃해서 마셨다. 2달 후면 지겹게도 많이 올 기차역인데도 왠지 그리울 것 같아 사진으로도 남겨봤다.
월요일엔 오전 11시가 첫 수업이었다. 그것도 스포츠 수업! 기계반 남학생들과 함께 피구와 축구를 했다. 학창 시절 자주 했던 피구와 달리 프랑스 피구는 공을 2개 사용해서 더 박진감이 있다. 삼십 대 노익장의 힘을 보여주려다 역시 5분도 안돼서 공에 맞아 아웃, 아웃.
BTM 파티시에 시험이 있었던 화요일. 오늘 베누와에게서 문자가 왔다. 덕분에 합격했다고! 진심으로 앞날을 축하해주었다.
미술, 상업, 물리 수업이 있었던 수요일. 그리고 목요일은 병원 진료 때문에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 때문에 학교에 빠져도 어쨌든 결석이니까 하루만큼의 월급은 받지 못한다. 그래도 일하면서 병원에 가는 건 오후 진료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인데 학교는 좀 부담이 덜해서일까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주간에 병원 예약을 잡는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학교 측에서 너무 급하게 이번 학기 성적처리를 다 해버리는 바람에, (한국으로 치면 방학 며칠 전 나이스 출결처리를 다 끝낸 셈?) 결석했음에도 출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앗싸 내 70유로!
사실 테크놀로지 수업이 있는 목요일과 실기 수업이 있는 금요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날이다. 결석하면 따라가기 유독 힘든 수업이기도 하고 테크놀로지 수업에서 금요일 실기 수업 과정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금요일 허둥대지 않고 따라가려면 눈 크게 뜨고 수업에 초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날 테크놀로지 수업 때 1학기 결산 쪽지시험을 보고 (무척 어려웠다는 후문이...) 그리고 수업을 했던 선생님이 그날 오후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요일 수업은 부담되었지만 어찌 됐건 빠져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또 처음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1학기 마지막 실기수업이 있던 날이다. 공휴일과 시험일정과 겹쳐 우리의 실습 진도는 많이 뒤처져있다. 실습 과제는 초콜릿-배-샬롯트 케이크(Charlotte aux poires et chocolat)! 산딸기를 이용한 샬롯트 케이크는 많이 봤는데, 초콜릿을 사용한 샬롯트는 또 처음이라 기대가 많이 됐다. 몇 주전 BTM 쇼콜라티에 시험 보조를 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역시 목요일 수업을 빠진 탓에 글리사쥬를 만드는 것부터 허둥지둥 실수가 많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럽 탓에 다시 한번 글리사쥬를 만들고, 초콜릿을 녹이고... 마치 첫 실습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1년 만에 진짜 많이 성장한 게 느껴지는데, 나는 한 번이라도 수업에 빠지거나 예습을 하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허둥대고 있으면 기똥차게 주변 학생들이 눈치채고 도와주거나 남은 크림을 건네주고는 한다. 경쟁하되 으쌰 으쌰 하며 서로 도우려는 분위기가 있어 다행인 우리 반이다.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라 3시간 내리 실습실 청소를 하고 지쳐버린 탓에 학생들과 단체 사진을 찍을 힘도 없었다. 대신 1년 동안 너무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받은 답장들. 함께해서 고마웠고, 내년을 기약했다. 고마운 아이들.
2달간의 여름 방학. 이 방학 동안 한국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온다.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맛보게 해 줄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