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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Sep 07. 2022

훌쩍 자란 아이들

제과학교 2학년의 시작

        8월 30일 화요일. 제과학교 2학년 과정이 시작해서 거의 두 달만에 학교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학생들은 여름 동안 휴가를 갔는지, 못 갔는지 여부에 따라 겉모습부터 달랐는데, 휴가를 다녀온 친구들은 피부가 예쁜 구릿빛이 나고 제대로 된 휴식으로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반면 1년 차라 혹은 업장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휴가를 쓸 수 없었거나, 바캉스 시즌에 손님이 많이 오는 관광지에서 일하는 경우, 혹은 다른 직원들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직 휴가를 못 간 학생들의 경우 얼굴이 허옇게 떠서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이 더운 날 오븐 앞에서 일하는 건 체력이 좋은 십 대 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작년 여름만 해도 중학생이었던 그들에게 세 달 정도 긴 여름방학을 보내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첫 사회생활로 제대로 된 휴가도 못 간 학생들의 얼굴은 어째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피부를 검게 그을리고 손목에 조개껍질 팔찌를 해서 보기만 해도 바다 냄새가 나는 학생들이건 고된 일 때문에 손목에 팔찌 대신 보호대와 파스를 붙이고 있는 학생이건 눈에 확 들어온 공통점은 키가 훌쩍 자랐다는 것이다. 키가 나만하던 남학생들은 여름 동안 풀이 자라듯 한 뼘은 더 자라서 나타났고 오랜만에 학교에 올 설렘에 화장을 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들은 어른 느낌이 물씬 났다.      


        프랑스인에게 여름휴가의 중요성은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공통사항인가 보다. 한국에서 교직에 있을 때 느낀 거지만 학생보다 방학을 더 좋아하는 건 선생님들이다. 방학을 아무리 사랑하는 선생님들이라 하더라도 개학 일주일 전에는 학교에 출근해 새 학기 준비도 하고 교실도 미리 청소해두고 학생 맞을 준비를 하는데, 프랑스 선생님들은 개학날 학생들이랑 같이 학교에 첫 출근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필이면 개학 첫날에 실습이 잡혀있던 우리 반은 참 운이 없게도, 실습시간 반절은 실습실 청소하는 데 보내야 했다. 방학식 날에도 청소한다고 빠지고, 선배들 시험 본다고 빠지고, 1학년 실습 품목도 다 마치지 못한 채 진도가 많이도 밀렸는데, 진도까지 마음에 담아두는 마음 좁은 전직 교사는 프랑스 선생님들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아닌가, 휴가를 100프로 즐겨야 하는 건 그들의 권리인 건가. 생각해볼 문제. 아무튼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초코 에클레어 실습은 아쉽게도 건너뛰어야 했지만, 바닐라와 산딸기를 넣은 bavarois크림 케이크는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 bavarois는 크렘 앙글레즈 (젤라틴으로 굳힌 커스터드 크림)에 설탕을 넣지 않고 기계로 올린 생크림을 섞어 만드는데, 두 번째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85도만 넘어가도 몽글몽글 덩어리가 생기는 크렘 앙글레즈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모두 다 갈아버릴 수 있는 믹서기. 실기시험을 대비해서라도 믹서기를 구매해야 할 것 같다.     

바닐라 산딸기 bavarois 케이크. 왼쪽이 교수님 작품. 내가 쓴 V는 어째 아무리봐도 자궁처럼 생겼다. 나의 자궁아 안녕하니?
청소하던 중 쉬는 시간, 복도에 주저 앉은 우리반 학생들과 원래 만들었어야 했던 초코 에클레어. 배움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


       참고로 처음에 30명이었던 우리 반은 방학을 계기로 진로를 변경하거나 업장을 옮기면서 반을 옮기게 된 학생들이 많아 15명으로 줄었다. 다른 반으로 옮겼던 카풀 친구 아나이스도 결국 1학년만 마치고 결국 파티스리 과정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도 말고 8개월만 더 참고 공부하면 되는데, 그녀보다 더 늦은 나이에 같은 길을 걷는 나로서는 지난 1년간의 힘들었던 공부가 아깝기도 하고 그녀의 정처 없는 방황도 안타까웠다. 10년 후에 실제로 파티시에로 살아가는 동창은 채 다섯 명도 안된다던 니콜라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겠지...        


        개학 첫 주. 실기 선생님들을 비롯한 모든 과목 선생님들이 강조한 것은 '2학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였다. 가장 먼저 시험을 보는 과목이 스포츠 시험인데 4월 중에 볼 예정이다. 진짜 겨울만 지나면 시험이 코 앞이다. 가장 와닿았던 조언은 '지금 일하는 업장보다 중요한 건 나의 디플롬이다'였다. 업장에서 일손이 부족하니 학교를 빠지고 일하러 와달라고 해도 거절할 것, 남은 계약기간 동안 업장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울 것. 업장과의 의리보다 CAP 자격증을 따는 게 더 중요한 목표임을 잊지 말자는 것일 테지.


        방학 동안 생각이 많았는지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내년에 상위 과정으로 올라갈지를 묻는 건의 설문 조사에 상위과정으로 간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의외로 간호사가 되기 위한 포마시옹(formation; 교육)을 받겠다거나 고졸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마음으로는 제빵 교육을 1년 더 받고 싶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 파티시에 자격증부터 취득하고 보자! 원래 계획으로는 올해도 대학 부설 어학원에 다니며 C1 레벨 불어 공부를 겸행하려고 했는데, 정오에 퇴근해 2시부터 6시까지 내리 앉아 공부하는 걸 1년간 겸행해보니 체력적으로도 너무 부담되고, CAP 시험 준비에 좀 더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CFA에서 받을 수 있는 파티시에 과정을 설명한 표. 합치면 무려 8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학생들끼리 만들어 본 귀여운 우리반 규칙. 수업에 집중하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날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선선해지고 있는 요즘, 미래에 케이크 굽는 멋진 할머니가 되길 바라며... 2학년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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