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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Oct 03. 2022

부풀지 못한 반죽

생각이 많아서

병원 어플로 매일 맞아야 할 주사 정보가 업데이트된다.

    과배란을 시작했다. 지난 1차 때 단 하나만이 정상 배아로 판명되었고, 안타깝게도 이식은 실패로 끝났다. 1차 때 바로 임신이 되면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라더니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프랑스 정책상 최대 4번 지원이 가능하니, 단 3번밖에 기회가 남지 않은 셈이다. 

    

    일하는 곳에서도 후배들이 들어오니 몸을 쓰거나 무거운 걸 들어 올리는 일은 다행히 그 빈도가 줄었다. 어학원도 올해는 쉬기로 하고 퇴근 후에 가끔 수영도 다니며 체력 관리에도 열중했다. 새로 바꾼 과배란 주사에 대한 기대도 컸다. 매일 아침 피검사를 하고 초음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느라 오전 수업에 몇 번 빠졌다. 제과 학교에 가는 주와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시기가 맞물려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지난 1차 때에는 하필 일하는 주간이라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던 걸 생각하면 왜 그리도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빠지고 병원 진료를 다니는지 이해가 된다. 그만큼 어프헝티들이 병원 진료를 위해 일을 빠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리고 찾아온 채취 날, 예정일보다 앞당겨 채취했는데, 1차 때보다 오히려 성적이 좋지 않다. 내가 그만큼 체력이 떨어졌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혹은 새로 바뀐 주사약이 맞지 않았거나 이유는 찾아보면 많은데, 이유를 찾아도 어차피 생긴 결과 때문에 드는 좌절감은 막을 도리가 없다. 호르몬의 영향 탓일까 몸은 붓고 눈물이 난다. 


    채취 다음 날. 실습수업만큼은 빠지고 싶지 않아 학교에 갔다.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먹은 탓에 약간 멍한 느낌은 있었지만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Pâte feuilletée를 하는 날이라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었다. 아이를 갖는 게 무조건 성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늦게 가진다고 실패하는 건 아니지만, 내년 이맘때쯤 프랑스 생활을 통해 목표했던 제과 디플롬도 아이도 다 갖지 못한다면 얼마나 허망할지란 생각에, 하나라도 내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공부에 집착하게 된다. 하루쯤 쉬는 게 어떨까 싶다가도 같은 반 10대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30대, 몸만 어른인 마음 약한 성인인 나의 고민은 고맙게도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지곤 한다. 우리 반 10대 학생들의 고민은 다양하다. 내년에 무슨 과정을 밟을지, 공부를 계속할지 취업을 할지, 운전면허 수업은 어느 학원을 통해 배우는 게 좋은지, 청소만 엄청 시키는 교수님이 얄밉다고 쉬는 시간 복도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준다. 그 나이 고민이라고 작은 것도 아니고 치열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정말 단순하게 그 고민과 걱정을 해소하는 아이들을 보며 위로받는 것도 사실이다. 

    Pâte feuilletée는 제과에서 많이 사용하는 반죽으로 크로와상 반죽과는 달리 levure를 넣지 않아 엄청 많이 부풀지는 않아도 겹겹이 쌓인 버터의 힘으로 치켜 오르는 반죽이다. 이 반죽으로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갸또가 바로 밀푀유 mille feuille. 갈렛트나 플랑의 fond도 이 반죽을 사용한다. 이 반죽을 할 때는 차가운 상태에서 반죽을 얇게 미는 laminoir 기계를 사용하는 게 중요한 스킬인데, 안타깝게도 우리 매장에서는 셰프 말고는 이 기계를 만져볼 기회조차 없다. 나로서는 학교에서 밖에 연습해 볼 수밖에 없으니 그만큼 실습을 빠지는 게 부담이었다. 단연 업장에서 매번 이 반죽을 만드는 학생들의 결과물은 달랐다. 켜켜이 결이 살아있는 반죽, 예쁘게 부풀었다. 반면 나의 결과물은 처참했다. 파이 가운데 구멍도 생기고, 잘 부풀지 않아 바삭거림도 없었다. 교수님은 내가 기계 앞에서 생각이 너무 많아 천천히 조심히 다루는 바람에 반죽 온도가 올라 실패한 거라 평가했다. 업장에서도 기계 사용 경험을 자주 할 수 있도록 업장에 보내는 알림장 같은 노트에 특별히 말도 남겨주셨다. 내가 만든 못생긴 파이는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생긴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경험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크다. 생각이 너무 많은 건 어쩔 수 없고요...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만든 케이크 장식품들. 생각이 많을 땐 손을 많이 움직이는 이런 활동이 좋다. 
나는 힘들어도 어린 학생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혹시 있을 수 있을 신선 이식에 대비해 일주일 간 휴가를 냈는데, 이마저도 다음번 차수를 위해 반납하기로 했다. 실패한 못생긴 파이를 보며 자꾸 내 현실을 떠올리는 우울한 생각만 하는 것보다 일할 기운은 없어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잘한.... 선택이겠지?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 쌀쌀한 가을이 되니 몸도 마음도 쓸쓸하고 한국 생각이 간절하다.


  이럴 때 어울리는 건 시나몬 향 가득한 펌킨 파이. 오늘 한 번 구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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