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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Oct 14. 2022

파티시에의 하루 일과

새벽 4시부터 11시까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제과 일을 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아직 자격증도 따지 못한 초보 파티시에지만 작년과 비교해보면 분명 성장한 것이 느껴진다. 어느덧 매일 만드는 케이크들의 레시피는 머릿속에 남아 노트를 꺼내보지 않아도 척척 계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손으로 A 작업을 하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다음에 할 B 작업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매일 하는 업무라 지겨울 만도 하지만 그 매일매일의 작업에 의해 완성도가 높아지고 노하우가 쌓이고, 갑자기 닥치는 돌발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이 생기는 것이다. 두 손으로 일하는 이 일의 매력이 이것이 아닐까? 교사도 수업 노하우가 쌓이고 행정처리 절차에 익숙해지면서 야근 횟수가 주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무리 경력이 많아져도 학생들을 대하고 학부모와 상담하고 관리자들과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은 너무나 어렵지만... 그래서 맛있고 예쁜 케이크라는 완성 물을 짠하고 바로 만들어 내는 이 일이 수많은 사람을 대하고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교육자의 길보다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많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파티시에와 교사 중에 뭐가 더 맞는 것 같아요?'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한 직종이라 정확한 답변을 줄 수는 없지만, 파티시에는 교사의 업무로 치면 1박 2일 놀이공원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다녀오는 만큼의 체력이 요구되나 정신적 스트레스는 매우 적다고 비유하곤 한다. 남들 자는 새벽에 일하고 남들 쉬는 주말에 바쁜 파티시에의 일. 새벽 빵집 주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파티시에의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        


    새벽 3시 기상 : 4시에 바로 업무를 시작하려면 적어도 3시에 일어나야 한다. 눈 뜨자마자 멍하니 침대맡에 앉아 깜깜한 창문 밖을 들여다보고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살펴본 후,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빵집에 도착. 매장 안에 들려 먼저 출근한 제빵팀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전날 팔고 남은 케이크의 수량을 체크하고 어제 들어온 주문은 없는지 장부도 확인한다.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밖에 내놓고 탈의실에서 조리복으로 갈아입은 후 주방으로 입장!


    새벽 4시~6시 1차 생산 : 주문지를 셰프에게 전달하고 냉장고에 보관 중인 모든 크렘 다망드, 피낭시에, 까눌레 등의 크림류를 꺼내놓는다. 냉동고에서 오늘 판매할 에클레어를 꺼내 잠시 해동한 후, 급속 냉동고의 온도를 4시간 동안 영하 20도로 유지할 수 있도록 설정해둔다. 가장 먼저 생산하는 케이크는 자르기 전 냉동을 오래 해야 하는 무스류의 케이크다. 치즈케이크, 바노피, 밀푀유는 요즘 내가 매일 만드는 케이크이다. 내가 이 세 가지 케이크를 만드는 동안 새로 들어온 어프헝티는 옆에서 에클레어에 크렘 파티시에를 넣고 글리사쥬를 입혀 완성하고 난 후 슈케트를 만든다. 월요일에는 크렘 파티시에를 제일 먼저 만드는데, 크림을 만들고 식히는 동안 다른 업무를 한다. 수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에는 생또노레나 흘리져스 같은 스페셜 갸또도 만들어서 조금 더 바쁘다. 이것이 크림 파트의 일. 한편 오븐을 관장하는 셰프는 계속 크로와상 같은 비오누와즈리를 구워내면서 타르트 반죽, 플랑 반죽을 라미누와 기계로 얇게 밀어 틀에 fonçage를 하고, 옆에서 다른 직원은 피자, 피낭시에, 쿠키, 까눌레, 타르트, 키쉬, 사과 크럼블, 가또 바스크 등의 구움 과자류 등을 만들면서 30분마다 한 번씩 크로와상을 매장으로 가져가 나른다.    

스페큘러스, 바나나, 연유, 생크림의 조합이 일품인 바노피 케이크. 매장에서 판매할 것은 잘라서 포장하고, 자르지 않은 것은 근처 레스토랑에 납품할 예정이다.  
오븐 옆 셰프와 함께 구움 과자를 만들어내는 tourage 파트. 사진은 가또 노르망디와 피스타치오 아브리코 타르트이다. 
밀푀유, 에클레어, 생또노레. 프렌치 파티스리에 없어서는 안될 가장 대표적인 품목. 매일 만들지만 날씨나 주방안 온도에 따라 크림의 텍스처도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새롭다.  

    새벽 6시~7시 : 전날 만든 플랑, 타르트, 브라우니 등을 자르고 데코레이션을 하고, 냉동고에서 잘 굳혀진 치즈케이크, 바노피, 밀푀유도 자른다. 우리 주방에서 생산한 케이크는 3곳의 매장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주문 수량에 맞춰 구분해서 담아야 한다. 우리 매장의 것은 우리가 직접 가져가서 진열하지만 다른 매장의 것은 배달 과정에서 부서질 수 있어서 자르지 않은 채로 보낸다. 매장 오픈 시간인 7시 전에 진열하는 게 좋지만 월요일처럼 복잡한 날의 경우 최대 8시 30분에도 진열을 마무리하곤 한다.    

매장에 진열된 케이크들. 마지막 사진은 다른 매장으로 보낼거라 따로 담아두었다. 

 아침 7시~8시 30분 2차 생산 : 오븐에서 방금 구워 나온 fine aux pomme이나 croustade, tartelette, crumble 등은 냉동고에서 식힌 다음에 완성한 후 매장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매장에 보내지는 시간이 늦다. 한 명이 이런 케이크들을 담당할 동안 다른 직원들은 생일 주문 케이크나 cadre와 같이 한 번 만들면 일주일은 판매하는 대용량 케이크를 만든다. 새로운 케이크 메뉴는 셰프가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일을 하면서 배우는 어프헝티에게는 셰프에게서 직접 배우는 이 짧은 시간이 가장 귀하고 보람된 순간이다. 생일 케이크에 이름을 초콜릿으로 멋지게 쓰는 것도 셰프가 하는 일인데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언제쯤 저렇게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사실 이 동안에 옆에서 서서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고 다음날 쓸 크렘 파티시에를 만들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의 겨울철 신메뉴인 산딸기 밀푀유, 초콜릿 fantastik, 파리 브레스트
로얄, 프레이지에 그리고 cadre 로얄 케이크

    8시 30분 ~ 45분 : 달콤한 휴식시간. 계속 긴장하며 서서 일하느라 피곤한 다리를 주무르며 의자에 앉아 쉬거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다. 다 함께 모두가 같이 쉴 수는 없고 돌아가면서 쉰다. 전쟁 같은 아침 한나절을 보내고 한숨 돌리는 동안,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들이나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혹은 잠깐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케이크 사진을 보면 어느새 쉬는 시간이 모두 끝나 있다. 


    8시 45분~9시 30분 : 내일 판매할 플랑, 브라우니 등을 만들고 치즈케이크와 바노피의 바닥 fond를 스페큘러스 과자로 만드는 시간이다. 오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늘 우선순위는 오븐에 들어갈 것을 플랑과 타르트 그리고 비스퀴이다. 다른 cadre 케이크들을 만들거나, 까눌레와 피낭시에 반죽도 만들고 쿠키, 에클레어 반죽이나 여러 가지 파이 반죽, 크로와상 자망드, 크로크 무슈 등도 필요에 따라 만드는 시간이다. 셰프의 경우 pain aux raisins 같은 비오누와즈리를 만든다.   

      

피스타치오 다쿠와즈와 패션 무스, 산딸기 무스를 넣고 만든 cadre 케이크. 저 네모난 케이크 틀을 cadre라고 하는데 저 한 cadre에서 약 40개의 조각 케이크가 나온다.

    9시 30분~10시 15분 : 가장 지루하지만 하루 일과의 끝을 알리는 작업 plaquage. 우리 업장은 크로와상과 뺑 오 쇼콜라는 냉동 생지를 구입해서 구워서 판매한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큰 부분이다. 그래도 다른 비오누와즈리는 직접 만드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음날 판매할 비오누와즈리를 미리 철판인 plaque에 간격을 두어 놓는 걸 plaquage라고 한다. 한 철판에 크로와상 15개가 들어가고 하루에 보통 18판을 판매하니까, 약 270개를 판매하고 크로와상 한 개 가격은 1.10유로니까 크로와상만으로 300유로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참고로 크로와상과 바게트 가격은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인 대중교통 기본요금처럼 프랑스 정치인들에게 서민들의 삶을 잘 아는지를 묻는 단골 질문이기도 하다.  

비오누와즈리, 뺑 오레, 푸가스, 뺑 오 쇼콜라, 크로와상, 햄버거까지 발효실에 꽉 찬 제품들. 이게 다 돈이란 말이지...?


    10시 15분 ~ 11시 : 청소 그리고 퇴근! Plaquage가 일찍 끝나면 밖에 나가 5분 정도 공기를 쐬고 나서 주방으로 돌아와 물청소를 시작한다. 셰프와 다른 직원은 인근 식당들로 햄버거 빵 배달을 다녀오기도 한다. 굽는데 오래 걸리는 가또 노르망디와 키쉬까지 잘라서 매장에 전달하고 혹시나 빠뜨린 게 없나 냉장고 안을 구석구석 살핀다. 청소는 고되지만 하루가 마무리되는 셈이니 신나게 음악을 틀어놓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다 보면 더러웠던 주방 바닥도 어느새 깨끗해진다. 시간이 남으면 내일 쓸 나파쥬나 글리사쥬도 미리 통에 담아두면 정말로 업무 끝! 하루 7시간 근무라 새벽 4시에 시작한 업무가 오전 11시면 끝난다. 주말 같으면 남들이 일어날 시간에 하루 일과를 마친 셈이니 하루를 두 번 사는 기분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창문도 없는 주방에서 하루 종일 더위에 맞서 일하고 나서 퇴근할 때 밝은 햇살을 보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매장에 들려 샌드위치 하나와 바게트 하나를 들고 동료들과 맥주 한 잔을 하거나 수영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1시가 채 되지 않는 기적!

청소 후 맥주는 그야말로 시~~~원~~~!

    

    쉬는 날 일을 떠올리며 일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일중독인가 싶지만, 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요즘이 참 좋다. 이렇게 하루 일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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