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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Oct 23. 2022

루카 이야기

자폐인 파티시에

    장애가 아니라 성격이 문제야!


    상업 Gestion 시간에 루카와 같은 조로 발표를 막 마친 나오웰의 불평이 쏟아졌다. 20분짜리 비디오를 보고 4가지 주제에 맞춰 요약해서 발표하는 과제였다. 루카가 맡은 건 1번 주제. 비디오에 소개된 파티스리에서 만드는 제품들을 나열만 하면 되는 가장 쉬운 주제였다. 주제를 이해 못 했던 건지, 그의 답은 산으로 가고 그의 조는 결국 최하 점수를 받았다. 


    루카는 작년 10월에 제과학교 우리 반에 전학 온 학생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덕에 첫인상이 무척 좋았다. 우리 반 여학생들은 서로 루카 옆자리에 앉겠다고 가위바위보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주변 학생들과 몇 마디를 나눌 때 나는 뭔가 익숙함에 끌려 뒤를 돌아보았다. 큰 목소리에 어조 변화가 없는 높고 단조로운 억양, 상대방을 보지 않고 살짝 다른 곳을 보는 시선, 손에 꽉 쥔 소음 차단 헤드셋. 혹시...?


    다른 학생들도 그의 다름을 알아차리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교사들도 수업의 맥을 끊는 루카의 질문에 진땀을 흘렸고, 제과 실습시간에도 남들보다 배는 느린 속도에 쉬는 시간이면 교수님에게 불려 가 혼이 났다. 수업 중간에 주변 학생들이 조금 떠들기라도 하면 소리에 예민한 그는 비속어를 사용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급해도 절대 뛰는 법이 없는 그는 매일 아침 지각하기 마련이었고, 늦게 온 그를 위해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는 학생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점점 혼자가 됐다. 

실습시간의 루카. 주변이 정리가 안되있고, 같은 시간 다 같이 오븐에 넣어야 하는 타르트지를 남들보다 1시간 늦게 만들기 시작해서 이날도 혼쭐이났다. 


    루카는 자폐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특수학교 전공과에 해당하는 CFA-S (Les centres de formation des apprentis spécialisés)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제과 전공 통합교육을 받기 위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가 실습을 하는 빵집도 예전 학교에서 구해줬다고 한다. 그의 말로 추측해보건대, 케이크나 빵을 직접 만들지 않고 거의 대부분 냉동된 걸 구입해 녹여서 판매만 하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제과점인 것 같다. 이마저도 새벽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전 늦게 출근해 해동된 케이크에 마무리 데코레이션조차 해보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거나 설거지만 한다고 한다. 제과점 측은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장애인 고용 보조금이 있기에 그와 함께 일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일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는 것 같다. 그곳에서 루카가 일한 지도 2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다.      

실습시간 루카가 만든 밀푀유와 초코 타르트. 역시나 최하점을 받았다. 

    전 특수교사인 나도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같이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직업훈련을 받고, 똑같이 일할 권리가 있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그런 권리를 앞세워 통합교육 환경에 장애학생을 밀어 넣었고, 대학에 보냈고, 취업을 시켰다. 그런데 막상 장애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같은 학생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 때문에 최하 점수를 맞아 화가 난 나오웰에게 '그는 자폐가 있잖아'라며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을 건네는 건 상황만 악화할 뿐이다. 


    '그는 달라지려는 노력을 전혀 안 해. 옆에서 도와줘도 우리말은 듣지도 않고 다시 선생님들만 붙잡고 있고. 내가 아는 자폐인들은 얼마나 착하고 좋은데. 이건 그가 자폐여서가 아니라 성격이 이상한 거야!' 17살 소녀의 말에 놀랐다. 그가 자폐인이니까,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참고 도와주고 같이 어울려야 한다는 나의 꼰대식 논리는 어쩌면 다른 차별일 수도 있다.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은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고 교사가 나설 수도 없다. 그래서 어렵다.      

하굣길에 기차를 타러 함께 가는 길. 휴대폰 게임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그가 고양이도 좋아하는 줄은 또 처음 알았다. 

    나와 그는 매일 같은 기차를 탄다. 나의 앞자리에 앉아 매번 나의 발음을 단어 하나하나 꼬집어서 교정해준다. 생일이 지나 만 18살 성인이 된 그에게 성인이 된 걸 축하해!라고 말했다가 성인이란 단어를 영어식 발음으로 '어덜트'라고 했다가 또 지적받았다. 그의 '아듈트' 발음을 10번이나 반복해서 따라 말해야 했다. '고맙긴 한데 나 좀 가만히 둘래?'라는 말이 입 밖까지 나올 뻔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있은 후, 그가 갑작스레 내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봤다. 그리고 다음날 문자가 왔다. 

'J'aimerais bien sortir avec tous les camarades de notre classes (우리 반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귀여웠다. 표정 변화 일절 없는 그의 얼굴 안에 이런 고민이 있었구나. 


    어떻게 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이날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체육시간 CAP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선 800미터를 5분 안에 뛰어야 한다. 3분 30초 안에 뛰면 최고점을 받고 5분을 벗어나면 과락이다. 문제는 그는 뛰는 걸 싫어하는 데다 왜 빨리 뛰어야 하는지 개념이 아직 머릿속에 확고히 서지 않았던 것 같다. 뛰다 서다를 반복하는 루카를 향해 '빨리 뛰어!'하고 소리치며 응원하는 학생들에게 루카는 Con!!!!! (미친!!!!!)이라고 소리 질렀다. 학생들 모두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이은 Gestion시간에도 마찬가지... 


    '루카, 나도 불어를 잘 못해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게 쉽지는 않아서 네가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 같아. 일단 너에게 도움을 주고 응원해주려던 친구들에게 먼저 고맙다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3주 후 다시 학교에서 만날 루카와 학생들을 위해 달콤한 쿠키를 구워갈 생각이다. 달콤한 디저트 앞에선 마음의 뾰족한 가시도 무뎌지기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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