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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매니아 Nov 06. 2022

평등의 나라 프랑스?

성차별이 일상인 주방에서

      얼마 전 우리나라 제빵기업 에스피씨(SPC) 계열사인 에스피엘(SPL)의 경기도 평택공장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소스 혼합기에 빨려 들어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특수교사로 재직할 때에 흔히 겪는 업무상 상해는 허리를 다치는 일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학생의 화장실 신변처리를 할 때에 휠체어에서 변기로 옮겨 앉힐 때면 학생이 다치지 않게 조심히 옮기느라 허리를 많이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장애학생이 성장하며 몸집이 커지고 생리대까지 자주 갈아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면 화장실에 데려갈 때마다 심호흡을 하곤 했다. '오늘도 다치지 말자.' 잘못해서 허리를 삐끗한 날, 거기에 비가 와서 가뜩이나 예민했던 폭력성 정서장애 학생에게 얼굴을 맞아 뺨까지 빨갛게 부어오르면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곤 했다. 일반 학생들에게 매 맞는 교사는 대서특필되는 세상에서 매일 장애학생에게 매 맞는 특수교사의 삶은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 업무에 불과했다. 제빵공장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제빵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겪는지 알게 되었다.

    

      2022년 6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297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49.6%)이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었다. 20.7%는 밀가루 등 분진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 꼴로 생리불순, 난임, 유산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의 유산율은 41.7%로 여성 직장인 평균 유산율(23%) 보다 높았다.  -한겨레 21, <20kg을 수시로 들며 일했던 SPC 여성노동자>에서 발췌 2022.10.31.

      프랑스에서 파티시에로 일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멋지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국보다 더 적은 시간을 일하는 건 사실이지만 특수교사 못지않게 늘 허리 부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혁명과 평등의 나라인 프랑스임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성차별도 만연하다. 남성 파티시에의 체격에 맞춘 높은 작업대 규격 때문에 플랑 8개를 한꺼번에 만들 때면 12킬로짜리 냄비에 12킬로어치 우유를 펄펄 끓인 후 5킬로어치 계란 배합물을 가스 위에서 섞어야 하는데, 작업대가 너무 높아 작은 플라스틱 발판을 딛고 서서 섞어야 한다. 매번 뜨거운 반죽이 몸에 쏟아지면 어쩌나 아찔한 상상을 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다. 다 만들어진 플랑 반죽이 담긴 냄비를 가스레인지에서 작업대로 옮길 때 동료에게 같이 들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셰프가 '내가 이래서 여자 직원은 안 뽑는다니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30킬로짜리 가스통도, 25킬로짜리 밀가루 포대도, 25킬로짜리 버터 덩어리도 혼자서 옮겨왔던 여자 어프헝티들에겐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우리 주방에서 셰프를 포함한 정직원 셋은 남성이다. 분위기가 싫다며 얼마 전 그만둔 윌리엄을 제외하고 작년이나 올해까지 수습생 신분인 어프헝티는 모두 여성이다. 25킬로짜리 밀가루 두 포대를 양쪽 어깨에 착착 지고 오는 남성 직원들의 힘이 부럽다. 여성 어프헝티들의 섬세한 데코레이션이나 균일하고 꼼꼼한 작업능력보다 급할 때 밀가루 포대를 금방 들고 올 수 있는 남성 직원의 힘이 더 인정받는 주방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지저분한 주방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바닥에서 냄비 높이까지 160cm가 넘는다.
밀가루, 설탕 포대에 반죽기, 무거운 철판이 가득한 에셀까지 힘 써야할 일이 많은 주방. 하지만 고장난 환풍기에 침침한 조명, 미끄러운 바닥... 우리의 안전은 어디에?   
SPC그룹의 여성노동자는 임금, 근속기간 등에서 차별을 겪고 있었다. 대표 계열사인 SPC 삼립의 성별 임금격차는 44.3%다.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절반 가까이 적게 받는다는 뜻이다. 한국 평균 성별 임금격차인 31.1%(2021년 기준)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회사의 여성 평균 근속기간은 4년 2개월로 남성(7년 9개월)의 절반에 불과하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직원이 휴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직원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투입된 건 경력 5년의 제과 CAP를 소지하고 BP 제빵 학위를 공부 중인 Flora였다. 아무렴 업무 스케줄과 가장 잘 맞았다고 하더라도 가장 경력이 오래됐고 셰프 공백 시 셰프 역할을 하는 어프헝티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샌드위치 만드는 업무로 변경된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건 기존에 여성 직원이 하던 일이니까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사리 기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업무로 변경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장애학생들과 함께 일하는 제과점을 만들고 싶은 나에게는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다. 차별받지 않는 환경. 여성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일하기 쉽고 안전한 업무 환경이라면 남성 혹은 비장애인에게도 좋은 업무 환경이 아닐까?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만든 케이크가 아닌, 만드는 사람도 행복한 맛 좋은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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