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매니아 Oct 02. 2022

술 익어가는 소리

Levure+Sucre=Alcool+CO²

        바야흐로 술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지난여름은 35도를 훨씬 웃도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강수량도 적어 가뭄에 산불까지 농가들에겐 여러모로 어려운 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조량이 풍부한 이런 기후에서 자란 과일들의 당도가 유독 높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맛 본 멜론, 복숭아, 무화과가 크기는 작아도 맛이 참 좋았다. 포도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어려움을 딛고 어렵게 성장한 만큼 당도는 높지만 수확량은 적어 그해 만든 와인은 맛과 희소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포도 수확이 한창인 9월의 한 주말. 와인도 담그고 맛도 보러 근처 와이너리에 갔다.

    

    내가 사는 툴루즈는 보르도와 멀지 않다. 보르도 하면 와인을 꼽을 정도로 보르도 와인, 그중에서도 생테밀리옹 와인을 으뜸으로 뽑지만 품질이나 맛이 보르도 못지않은 와인 산지도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Madiran 와인이다. 툴루즈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Auch와 Pau 사이에 있는 Gers 지역에서 나는 와인이 버바로 Madiran 와인인데, 나는 Madiran 와인 중에서도 달달한 화이트 와인을 특히 좋아한다. 오늘 내가 방문한 와이너리는 Chateau Viella라는 곳이다. 

와이너리에 있는 작은 농가. 할머니가 손수 기르는 채소들이 먹음직스럽게 열렸다. 유리병에서 익어가는 것은 바로 포도로 만든 위스키.

    주말 아침 일찍 와이너리에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 됐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온 나이 지긋한 노부부도 있었다. 평균 연령은 60대 정도. 요즘은 어딜 가나 나이 많은 축에 끼는데 이렇게 가장 나이 어리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처음 시작은 10가지가 넘는 포도 품종마다 당도를 측정하고 수확해도 될 만큼 잘 익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스타쥬로 일할 때 뤼바브 절임을 만들 때 사용했었던 굴절식 당도 측정기를 여기에서도 만나니 반가웠다. 가장 낮은 당도는 10 브릭스, 가장 높은 것은 17 브릭스로 같은 땅, 같은 기후에서 자랐는데도 품종마다 당도가 다른 것이 신기했다. 포도가 잘 익었는지는 포도씨의 색깔로 확인하는데, 포도씨 색깔이 녹색이 아닌 진한 갈색이면 잘 익었다는 뜻이란다. 소비자들의 입맛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와이너리에서도 이에 맞춰 새로운 품종을 찾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좋아하는 와인은 톡 쏘고 단 맛이 강한 와인인데, 이 입맛에 가장 부합하는 게 바로 코카콜라라고 한다. 와이너리 아저씨의 이 말에 모두들 깔깔하고 웃었지만 아저씨는 아주 진지해 보였다. 프랑스의 기후도 점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만큼 더더욱 건조해지고 더워지다 보면 십 년 후, 이십 년 후 프랑스 와인 지도도 달라질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농업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는 농산물에 붙는 라벨의 공신력이 아주 높다. 그중 하나가 바로 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이다. 이곳 와인도 AOC 라벨이 붙어있는데, 이 라벨을 부착하기 위해서는 해당 농사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중 하나가 인공적으로 물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엄청 더웠던 여름날 말라비틀어져가는 포도나무들을 보면서도 꿋꿋이 규칙을 지킨 아저씨에게서 장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1시간 내내 강의를 듣다가 포도를 따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전지가위가 워낙 날카로워 손을 베일까 조심해야 했지만 양동이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금방 차올랐다. 사실 이렇게 손으로 따는 경우는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나 이런 특별 수업을 하는 경우에만 그렇지 대부분 기계로 수확을 하는데, 코로나로 모로코 등지에서 오는 계절노동자 수가 줄었고, 최저임금도 많이 올라 인건비가 많이 오른 데다 이래저래 부가적인 비용까지 합치면 기계로 수확하는 게 10배는 더 저렴하다고 한다.           

이날 딴 포도의 양. 30L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포도를 착즙하고 씨와 나뭇가지 등을 걸러낸 후 큰 탱크에 넣고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다. 잘 순환되도록 공기를 주입시켜주는데 이럴 때 탱크 입구에서 어마어마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가 나와 냄새를 맡다 훅하고 들어온 가스에 숨이 다 막힐 뻔했다. 현기증을 일으켜 탱크에 빠지는 사고도 가끔 일어난다고 하니 조심 또 조심! 효모가 포도 안 당분을 먹고 뿜어내는 게 바로 이산화탄소와 알코올! 제과학교에서 매주 매주마다 배우는 발효의 원리이다. 발효기 안에서 탱글탱글하게 부풀어져 나온 빵 반죽을 봐도 긴가민가했던 발효의 원리가 술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니 제대로 와닿는다. 더욱이 탱크에서 조금 따라내 맛 본, 효모를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알코올 농도 3도 정도의 포도 원액 모주는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뽀글뽀글 이산화탄소가 보인다

    프랑스에 살아서 좋은 점 하나는 내가 먹고 마시는 농산물의 산지와 가까이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오늘 내가 만든 와인은 숙성과 병 주입을 거쳐 3년 후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3년 후 어떤 맛의 와인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작가의 이전글 정체성을 잃은 가게의 운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