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미끄러 넘어졌다. 누군가에게 언제라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나에게,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오전 10시 무렵. 2시간 후 퇴근을 앞두고 서둘러 일을 하던 중이었다. 네모난 틀에 굳힌 Royal 케이크를 일인용 크기에 맞게 규격에 맞게 자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살짝 녹아야 잘 잘리는데, 툴루즈답지 않게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케이크는 여전히 단단하기만 했다. 이틀분량 정도를 잘랐을 때 니콜라스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오븐에 자리 났다! 이제 어서 비스퀴를 만들어!' 나도 더 이상 손목 아프게 계속 케이크를 자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남은 케이크를 다시 냉동고에 넣고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 칼과 작은 칼 여러 개, 행주, 뜨거운 물이 담긴 큰 플라스틱 litre을 양손에 나눠 들고 싱크대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순간 신발이 쭉 미끄러지더니 오른쪽 골반과 무릎을 바닥에 크게 찧었다. 양손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그대로 뼈와 근육에 와닿았다.
내가 미끄러진 부분은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끄러운 타일이었다. 주방바닥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마감재료인데,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는지, 수리를 하면서 실수로 마감처리를 잘못했는지 딱 저 부분만 유독 미끄러웠다. 미끄럼방지 신발을 신고 일하지만 저 미끄러운 타일에 밀가루나 조금의 물이라도 묻어있을 때면 주방 신발도 소용이 없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넘어질뻔한 상황이 연출됐다.
1월 13일 난자채취, 1월 17일 배아이식을 하고 28일 임신확인 피검사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눈물이 핑 도는 고통이나 창피함보다 걱정이 먼저 되었다. 혹시나 착상 중이었을 배아가 잘 못되진 않았을까? 옷이 홀딱 젖기도 했고 상처도 볼 겸 탈의실에 갔다. 무릎은 푸른색이 역력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닌 거 보니 부러지거나 삔 건 아닌 것 같았다. 연락을 받은 사장이 서둘러 와 약국에서 멍연고를 사다 주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너무 힘들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온 집. 집에 오자마자 괜히 서러움이 몰려왔다. 뭐 때문에 내 몸하나, 새 생명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일을 하는 건지 죄책감도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래전에 사두었던 임신테스트기를 찾아냈다. 피검사 전까지는 소변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당장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확실히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