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매니아 Feb 08. 2023

Accident du Travail

사고 그리고...

  주방에서 미끄러 넘어졌다. 누군가에게 언제라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나에게,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일어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오전 10시 무렵. 2시간 후 퇴근을 앞두고 서둘러 일을 하던 중이었다. 네모난 틀에 굳힌 Royal 케이크를 일인용 크기에 맞게 규격에 맞게 자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살짝 녹아야 잘 잘리는데, 툴루즈답지 않게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케이크는 여전히 단단하기만 했다. 이틀분량 정도를 잘랐을 때 니콜라스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오븐에 자리 났다! 이제 어서 비스퀴를 만들어!' 나도 더 이상 손목 아프게 계속 케이크를 자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남은 케이크를 다시 냉동고에 넣고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 칼과 작은 칼 여러 개, 행주, 뜨거운 물이 담긴 큰 플라스틱 litre을 양손에 나눠 들고 싱크대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순간 신발이 쭉 미끄러지더니 오른쪽 골반과 무릎을 바닥에 크게 찧었다. 양손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그대로 뼈와 근육에 와닿았다.


   내가 미끄러진 부분은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끄러운 타일이었다. 주방바닥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마감재료인데,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는지, 수리를 하면서 실수로 마감처리를 잘못했는지 딱 저 부분만 유독 미끄러웠다. 미끄럼방지 신발을 신고 일하지만 저 미끄러운 타일에 밀가루나 조금의 물이라도 묻어있을 때면 주방 신발도 소용이 없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넘어질뻔한 상황이 연출됐다.


   1월 13일 난자채취, 1월 17일 배아이식을 하고 28일 임신확인 피검사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눈물이 핑 도는 고통이나 창피함보다 걱정이 먼저 되었다. 혹시나 착상 중이었을 배아가 잘 못되진 않았을까? 옷이 홀딱 젖기도 했고 상처도 볼 겸 탈의실에 갔다. 무릎은 푸른색이 역력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닌 거 보니 부러지거나 삔 건 아닌 것 같았다. 연락을 받은 사장이 서둘러 와 약국에서 멍연고를 사다 주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너무 힘들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온 집. 집에 오자마자 괜히 서러움이 몰려왔다. 뭐 때문에 내 몸하나, 새 생명도 지키지 못하면서까지 일을 하는 건지 죄책감도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래전에 사두었던 임신테스트기를 찾아냈다. 피검사 전까지는 소변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당장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확실히 하고 싶었다.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다. 실패일까 두려운 마음에 테스트기를 두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5분 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살짝 화장실 문을 열고 빼꼼히 테스트기를 찾았다.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두 줄...


'두 줄이다!'


요동치는 심장에 아픈 무릎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작가의 이전글 Sirha Lyon 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