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은 아직 아팠지만 출근은 했다. 토요일 하루만 더 일하면 그다음 주는 학교에 가는 주이기도 해서 평소처럼 일을 했다. 그래도 팀원들이 배려해 주어 무거운 것도 덜 들고 힘들면 좀 더 쉴 수 있었다. 짧은 쉬는 시간마저 영양제를 챙겨 먹고 화장실에서 질정을 넣고 나면 금방 끝나버렸지만 그 잠깐 앉아있을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이 꿀같이 달콤했다. 이날은 첫 피검사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피검사를 할 수 있는 라보들이 주말이라 정오면 문을 닫기 때문에 11시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후배에게 청소 마무리를 부탁하고 얼른 퇴근을 했다. 빵집 문을 나서던 그때는 몰랐다. 그날 이후 오랫동안 그곳에 돌아가지 못할 줄은...
임테기 두줄을 확인한 터라 피검사 자체는 떨리지 않았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휴대폰으로 결과가 왔을 때 너무 떨려서 바로 열어볼 수 없어서, 남편에게 대신 봐달라고 했다.
결과는 B-hcg 277. 제발 100만 넘어라 간절히 바랐었는데,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의 피검사에서 더블링도 무사히 통과.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고 오랫동안 바라왔던 순간이었지만 아이가 정말 이렇게 한 순간에 찾아오는 거구나 하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수업은 여전히 따라가기 버겁지만, 그래도 이론 수업은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되니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보는 선생님들 중에 유독 변화가 감지된 선생님이 있었다. Gestion 상업 담당 선생님의 배가 유독 많이 나와서 혹시 임신하신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짓궂은 남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임신 6개월이라고 답하며, 3월에 출산휴가에 들어가 우리 졸업까지 함께하긴 어려울 거 같다며 되려 미안해하셨다. 무사히 임신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내가 졸업시험을 볼 때에는 저 정도 배 크기겠구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일하는 임산부 선생님을 보며 얼마나 힘들까, 동지애도 느꼈다.
그런데 피검 이후로 배가 자꾸 나와서 임신 6개월 차 선생님 배랑 점점 비슷한 사이즈가 되는 게 아닌가. 조금만 먹거나 걸어도 숨이 찼다.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청바지가 쬐여 불편해 지퍼를 열어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배가 나왔다 싶은 그때, 나는 미련하게도 병원을 가는 대신 임부복 바지를 샀다. 배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바지에 세상 편함을 느끼며 좋아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때면 배가 확 쏠리며 명치가 아프고, 밤새 위경련에 시달리고 나서야 이거 상황이 심각하단걸 깨달았다.
그리고 찾은 병원. Hyperstimulation. 난소과자극증후군. 평균 2센티에 불과한 난소가 12센티까지 부어있었다. 초음파로 본 난소는 포도알 같은 난포에 복수가 가득 차있어 자궁보다도 오히려 커 보였다. 그리고 자궁에 보이는 아기집 한 개. 처음 보는 아기집이 신기해 그저 난소가 부은 건 그러려니 하는 나에게 의사는 신체활동 금지령을 내렸다. 과배란과 채취로 난소가 부어있는 상태에 임신호르몬의 영향으로 난소가 더 붓게 되었다고 한다. 혈전위험에 난소가 꼬이거나 물혹이 터지면 어렵게 찾아온 아이도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최소 25킬로는 불끈불끈 들어 올려야 하는 나의 일도 당연히 금지. 2주간의 병가를 받았다. 혈전방지주사를 매일밤 맞고, 하루 종일 압박스타킹을 신을 것. 그리고 무조건 안정을 당부하셨다.
그리고 병가 10일째인 오늘... 나에게 휴가 2주가 주어진다면 밀린 과제도 다 하고 시험 준비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버터만 생각해도 속이 메슥거리니 레시피 정리는 커녕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먹고 싶은 매콤한 떡볶이와 마라탕 먹방만 열심히 시청하다 이것도 입덧 때문에 할 수 없게 되었다. 무기력증이 이렇게 무섭다.
당장 3일 후부터 다시 출근해야 하는데... 괜찮을지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