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힘든 대로
지겨웠던 3주간의 병가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3주면 한국에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고, 밀린 공부도 끝마칠 수 있었을 텐데, 침대에만 종일 누워있게 만드는 컨디션 난조는 사람을 우울하게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배아 심장소리 듣는 날. 담당의는 난소 붓기는 변함없이 그대로지만 임신이 잘 유지되고 있으니 일상으로 복귀해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아기집 확인만으로 임신확인서가 발행되고, 임신 초기와 후기 모성보호 시간 혜택으로 단축근무를 할 수 있지만, 출산율이 월등히 높은 프랑스는 오히려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유산 확률이 높은 초기 12주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어야만 회사 및 관련 기관에 임신신고를 할 수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임신을 알릴 시기는 아니지만 하루종일 서서 일하고, 신체적 부담이 많은 일이라 직장에 복귀하기 전에 팀에게 알려 받을 수 있는 배려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셰프에게 문자로 소식을 알렸다. 바로 답변이 왔다. 축하한다는 말과 이모티콘이 가득. 그리고 바로 울린 전화벨.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어떠한지 묻는 전화였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복직을 하고 최대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싶으며, CAP 시험도 계획대로 응시할 거라고 답했다. CAP 취득 후 바로 MC 과정도 셰프 밑에서 더 공부하기로 했었지만, 출산 이후 얼마 동안 휴직할지에 따라 복직 시점이 달라질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선 더 깊이 고민한 후 정하기로 했다. '가족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일은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 임신을 말하기까지 왜 하필 지금이냐 비난받을까 두려웠지만, 셰프가 같이 기뻐해줘서 마음이 훨씬 놓였다. 시험을 앞둔 중요한 시기. 하지만 시험보다 지금 찾아와 준 아이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단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Médicin travail와 상담을 가졌다. 의사의 소견서가 강제성을 띄는 건 아니지만 뭔가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5kg 이상 중량의 물건을 드는 작업 및 알코올 증기를 사용하는 작업에서 배제할 것을 추천한다.' 이 짧은 소견서를 받기 위해 1시간 반이나 걸쳐 상담을 받았다. 물론 복직한 이후, 바쁜 와중에 15kg는 아무렇지 않게 들고 럼이 가득 들은 까눌레 냄새를 가까이 맡는 등 늘 지켜지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마다 의사의 얼굴이 떠오르며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하고 생각하곤 한다.
복직 첫날. 그리웠던 빵 냄새가 가득 풍기는 빵집에 들어섰다. 제빵사들이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두 팔을 번쩍 들고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해!'라고 외쳐주었다. 나도 두 팔 올려 힙하게 답변했다. '오랜만이야, 그리웠어!' 내가 없을 동안 바빴을게 뻔한 어프헝티들과 미안한 마음에 짧게 포옹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무척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어 활력이 돋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주방도 달라져 있었다. 내가 넘어진 자리의 타일이 바뀌어 있었던 것. 한 사람쯤 다치거나 기계가 완전히 고장 나야 바꿔준다는 짠돌이 사장님이 드디어 마음을 잘 쓰셨다.
복귀 후 첫 주. 오랜만에 만들어보는 케이크들이 낯설지만 마치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도 금방 탈 수 있는 것처럼 몸에 익힌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평소보다 천천히 그래도 모든 과정을 되뇐다는 느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 과정을 제대로 느끼며 일했다. 달라진 건 바닥의 타일만이 아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실력이 향상된 후배 어프헝티들. 나도 일을 많이 배웠던 게 작년에 선배 어프헝티가 일을 관두고 그 빈자리를 채우느라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때였다. 손끝이 더 야무져졌고, 도움 없이도 척척 잘 해내는 그녀들이 고마웠고 또 질투가 났다.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누워만 있었구나. 부지런히 다시 배워야겠다.
내가 자리를 비운 3주 동안 철없는 어프헝티 윌리엄도 소리소문 없이 잠적했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왜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셰프가 학교와 집에 전화를 해봤지만 잠수를 탄 윌리엄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머리가 박박 밀려 까까머리 대머리가 된 윌리엄이 나타났다. 방황하느라 그랬으려니,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그대로 받아들여줬다. 누구에게 머리를 빡빡 밀렸을까, 볼 때마다 적응 안 되는 헤어스타일이다.
동료 직원들은 내 소식을 모르는 상황에서 무뚝뚝한 셰프의 츤데레 같은 배려에 감사하다. 유독 추운 요즘, 추우니까 문 꼭꼭 닫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고, 무거운 건 다른 어프헝티들에게 들게 하는 등 요즘 모든 신경이 나에게 쏠려 있는 느낌이다. 복귀 후 사장과도 짧은 면담을 가졌다. 셰프와 전화통화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힘들면 언제든 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머나먼 타국에서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게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힘들 때가 많을 거라며, 출산 이후 육아휴직을 길게 가져도 괜찮으니 언제든 일하고 싶을 때 본인에게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물론 장담할 순 없지만, 출산 전까지 최대한 일할 수 있을 만큼 일하고 싶다. 일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심했던 입덧도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생또방에서의 시간. 그리고 맞이한 일하는 임산부로서의 새로운 챕터의 시작. 어렵게 찾은 일상에서 조금씩 나의 속도와 리듬을 되찾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