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매니아 Sep 09. 2021

특수교사, 프랑스파티시에를꿈꾸다

아니, 어쩌자고

    바리스타와 제과 제빵 자격증. 한국의 특수교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필수 자격증이다. 

장애학생들이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밥벌이를 하며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자립하여 살아가는 것이 특수교육의 목적이라 배웠다. 이에 특수교사라면, 특히 중, 고등, 전공과정을 가르치는 중등특수교사라면 장애 영역별 특성을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바로 다재다능한 기술이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학부생일 때 최대한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미덕이자, 이력서를 돋보일 수 있는 수단이라는 현장에 갓 뛰어든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은 내 많은 동기들이 중간에 휴학을 하면서까지 캘리그래피, 종이접기, 풍선아트, 원예치료, 바리스타, 케이크 디자인 그리고 제과제빵 자격증에까지 도전했다. 딱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정도의 얕은 지식과 경험이면 적어도 수업시간 40분을 채울 수 있는 '거리'를 줄거라 믿으며.


    원서로 익힌 여러 가지 장애의 원인들, 각종 심리학 생물학 교육학 등등등 이론으로 배운 전공 이론들을 머리에 가득 채운 갖 대학을 졸업한 이십 대 초반의 특수교사의 첫 수업은 흥건한 식은땀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임용고시를 통과했건 혹은 몇 차에 걸친 면접을 거쳐 어렵게 기간제 교사로 시작해도 마찬가지다. 학기 시작 며칠 전에 학생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기본교육과정을 토대로 진도표를, 학급운영교육과정과 학교교육운영과정을 네모난 표에 채워 넣다 보면 정말 이렇게 수업을 다 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작년 교육과정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를 끝낸 부장님이 연구실 한 구석에서 드립 커피를 내리며 말한다. '어차피 계획은 못 지키라고 세우는 거야.'  


    드디어 개학 날. 네모난 학교 문을 통과해 네모난 교실에 들어가 네모난 책상에 힘겹게 앉아 있는 일곱 명의 장애학생들과 두어 명의 보조인력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들이 보내는 시선은 차갑다. '당신이 가리고 있는 네모난 스크린에서 나오는 뽀로로 애니메이션이 더 재미있고 시간도 훨씬 잘 가는데, 좀 비켜줄래?' 그때 초보 교사는 깨닫는다. 특수교육의 질이 교사의 자격증 개수에 달려있다는 대학 선배의 조언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왜 부장님은 어째서 드립 커피를 그렇게 맛있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인지를. 수업 시간을 꽉 채울 수 있는 재미난 활동들을 많이 아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우스갯소리지만 특수교육의 수업은 대부분 기-승-전-미술이거나 기-승-전-요리이거나, 기-승-전-노래방으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이유는 뽀통령을 이길 수 있는(?) 그나마 약간의 승산이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이 가장 눈을 반짝 반짝이며 열심히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 그중에서 제과제빵 수업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인 글을 읽고, 수를 셈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이런 복합적인 능력들을 고루 발달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이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 장애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공무원도 유튜버도 아닌 바로 '바리스타'와 '제과제빵사'이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초유의 개학 연기 사태가 벌어지던 그 해. 자격증이라 해봤자 운전면허증이 전부였던 나는 전공과로 새로 이동하게 되었다. 맡은 교과목은 이름도 거창한 외식서비스. '조 선생님, 커피 가르칠래요? 빵 가르칠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